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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GO24の’ポケット’記者と共に歩く「経済散策」・・・経済の生きた本になって経済を通した神様の摂理歴史を証するためにペンを取りました。主と共に美しく神秘的な天国の経済散策路を歩いてみませんか?
保守と進歩の観点での生と信仰

2017/04/09|閲覧数 827

Translation :akashi

第19代大統領選挙
第19代大統領を選ぶ選挙が5月9日に確定し、大統領選挙の熱気が高まっている。ところで、その中心は保守と進歩をめぐる熾烈な論争が占めている。各党の大統領選候補者は、自分と自分の党だけが山積した課題を今後解決できる真の保守であり、真の進歩だという主張を前面に出している。
一体保守が何で、進歩が何だから、こんなに騒がしいのか?ややもするとあいまいになってしまう保守と進歩論争の中で、これまで韓国の政治が見せてきた野合と反覆が繰り返されるかと思って心配だ。そうなれば、再び国民は「そのナムルにそのご飯(訳注:「かわりばえのない組閣」の意)」という嘆きと共に、政界に対する失望を消す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

保守と進歩とは何か?
我々は保守と進歩を指して互いに敵対する思想程度に考えるが、実際、保守と進歩は互いにかみ合っている相対的概念と言える。一方を何かだと定義すると、もう一方は自動的にその意味が決まるからである。
保守と進歩とは、生活方式、社会制度の変化に対応する精神的な態度のことをいう。現在存在するすべての社会制度は、過去のある時期にその社会を支配していた精神的態度と事由の産物である。ところが、生活環境は継続的に変化するため、社会は絶えず現実により適合した精神的態度と事由を要求する。
このとき進歩主義性向を持つ人々は、生活環境の変化が要求する新たな視点や考え方、そしてそれに伴う制度調整の必要性を積極的に受け入れ、実践しようとする精神的な態度を示す。つまり、進歩とは既存の政治、経済、社会体制に対抗しながら、変革を通じて新たに生を変えようとする傾向である。一方、保守とは慣れているものを守るために変化を拒否する態度である。つまり、伝統の価値を重視し、既存の社会体制の維持と安定的な発展を追求する思想である。

なぜ保守主義者になり、進歩主義者になるのか?
では、なぜ誰かは保守主義者になり、誰かは進歩主義者になるのか?これは生活環境の変化を受け入れる姿勢の違いのせいである。
生活環境の変化に強くさらされて、それを緊急な状況と認識する人ほど、新しい思考を簡単に受け入れて、進歩主義者になる。一方、保守主義者は、既存の支配的視点と生活様式にそのまま従おうとする。
主に金持ちで、権力がある人が保守的な性格が強いが、概して我々の社会では政治家、上級公務員、宗教指導者、財閥総帥とその家族、企業経営者と役員、大学教授、大手新聞社とTV局幹部が保守的だと言える。彼らはあえて多くのエネルギーを消耗しながら生活様式や考え方を変え、調整しなくても生きる上で特に支障がないので、既存のものを維持しようとするのである。
ところが、お金がなく貧しい下位所得層の人々も保守的な態度を示す場合が多い。金持ちとは違って貧しい人が保守的なのは、あまりにも貧しいあまり、革新を考える余裕がないからである。結局、豊かな人は今日の状況に不満を感じる機会が少ないから保守的なのであり、貧しい人は明日を考える余裕がないから保守的なのである。
それで、どの社会でも、生活環境の変化にある程度プレッシャーを感じながらも、考える余裕がある中産層が最も顕著な進歩主義性向を示す。
また、概ね高齢層が青年よりも保守的である。若者は既存の制度や精神的態度にさらされた期間が短く、知的活動が比較的盛んで、既存のものに対する執着が少なく、それを変えるために使える精神的エネルギーが豊富なため、進歩的性向を示す。
一方、加齢と共に既存の思考はより強力な持続性を持ち、それを変えるために使える精神的エネルギーが不足するにつれて保守的に変わる。程度の差はあるが、加齢と共にますます保守的に変化するのは、生物学的に必然だと言える。
ウィンストン・チャーチル(Winston Churchill)は、「25歳の時に自由主義者でないなら心臓が無いのであり、35歳の時に保守主義でないなら頭が無いのだ」と言った。これをもじって哲学者カール・ポッパー(Karl Popper)は「若くてマルクス主義者でないなら心臓が無いのであり、年を取ってもマルクス主義者でないなら頭が無いのだ」と言った。これを変形して「若くて進歩主義者でないなら心臓が無いのであり、年を取っても進歩主義でないなら分別が無いのだ」と言う人もいる。とにかく、加齢と共に保守的な傾向が強くなることは間違いない事実である。

右派と左派

人々はよく保守を右派(right)、進歩を左派(left)と呼ぶ。これは1789 年のフランス革命直後に開催された国民議会に由来している。国民会議の議長席の左側には王政を倒してフランスを根本的に変化させようとする「共和派」が座り、右側には以前の王政体制を維持しようとする「王党派」が座っていたからである。
このような席の配置は、ルイ16世が処刑された後、開かれた国民公会(1792 年)の時も同じだった。庶民を代弁し、急進的変化を主張する「ジャコバン派(Jacobins)」が議長席の左側に座り、富裕層を代表し、漸進的変化を図る「ジロンド派(Girondins)」が議長席の右側に座った。
この時から急進的で改革的な性向を示す進歩勢力を「左派」と呼び、漸進的で保守的な性向を持つ保守性向を「右派」と呼ぶ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ところで韓国の場合、解放後、南は右派、北は左派に分かれて民族が分断された。このような状況で朝鮮戦争を経験したため、人々の認識において「左派」はつまり北朝鮮を示す言葉になってしまった。だから過去の政権は、政府に反対し抵抗する人々を「左派」、「左翼」、「アカ」だといって追いやったのである。

経済における保守と進歩 
ところで、経済学も志向する価値観によって保守と進歩に分かれる。保守はすべてのことを市場原理に委ね、政府の干渉を排除することで、自由な経済活動を奨励する。いわゆる市場と資本主義体制を積極的に擁護する新古典派経済学理論が保守に近い。
彼らは個人が富を蓄積できるように政府は自由に放任すべきだと主張する。皆が富を得ようと懸命に努力する過程で、同時に国も豊かになると信じているからである。しかし、自由に富を蓄積するように放っておけば、金持ちと貧しい人、雇用者と労働者の関係は永遠に変わらない。これによって、経済的不平等はより拡大するしかない。
逆に、進歩は自由な市場経済体制の問題点を克服するために、国が経済に介入すべきだと主張する。進歩は人々の間に存在する不平等をなくしたり軽減したりできると信じているため、国が経済活動に介入して富を均等に分配すべきだと主張する。

保守と進歩の均衡
現在社会で公認され、通用する生活様式は、正しいもの、善なるもの、適切なもの、美しいものが何なのかに関する社会的合意をもとに構成されている。ところが、生活環境が変化する時、それがもたらす衝撃がすべての個人に同じく伝わるわけではない。保守主義性向の人々はこのような衝撃を容易に受け入れられず、既存のものを維持しようとする。一方、進歩主義性向の人々は意識的に変化を志向する。
ところで、このような変化を受け入れられない保守主義者だけが生きる世の中ならば、決して革新は成されえない。そのような社会は存立自体を脅かす深刻な環境変化に適応できず、崩壊するだろう。逆に、保守主義者がいなくて、進歩主義者だけがいるとしたら、その社会は安定性を失ってしまう。生活環境のわずかな変化さえも制御できない社会的混乱と政治的革命に発展しうるからである。
だから社会が健全に発展するためには、保守と進歩の両方が本来の機能を果たしながら、適切な均衡を成す必要がある。飛んでいく鳥に大事なのは、右側、左側の翼が両方とも完全に本来の機能を果たすことである。社会発展にとって保守が求心力だとしたら、進歩は遠心力ということになる。
政治も同様である。保守政党と進歩政党が牽制しあい、均衡を成す時、民主政治は発展する。各政党が自らの政策について意見を交換し、議論することは、民主政治発展のための当然のプロセスである。ただ保守政党と進歩政党のうちどちらが正しいと判断する前に、国民の多様な考えを政治に反映することができる政党の存在が重要である。

信仰の保守と進歩
人間は霊魂肉で存在する。あえて保守と進歩のフレームに霊と肉を代入してみるとしたら、我々の霊は神様の御言葉に従って絶えず次元を上げていこうとする進歩的性向を持つ存在である。一方、我々の肉体は既存の習性と快適さを追求しようとする生物学的本能を示す保守的性向の存在である。
しかし、既存の快適さに浸っていては絶対に生が変化することはできない。したがって、この時代に新たに宣布される神様の御言葉で生の態度を直そうとする絶え間ない努力が必要である。ただし、その過程である一方に偏った不均衡な生ではなく、均衡の取れた生が重要である。
そのためには、神様が宣布なさる新しい時代の御言葉を受け入れられる進歩的態度が前提である必要がある。旧約という既存の認識観にとらわれて「イエス」が伝える新約の新しい思想を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パリサイ人、サドカイ人のような保守的な態度は、明らかに警戒すべき対象である。
鄭明析牧師は、人間の霊• 魂• 肉は互いに独立した存在ではなく、互いにかみ合って存在しており、どんな考えを持つかによって我々の行いが変わり、そのような行いの変化によって霊の救いが左右されるとおっしゃった。
個人の生だけでなく社会全般において新しい変化を渇望する今日、果たして自分は保守主義者なのか、進歩主義者なのか?一度くらいは深く考えてみるべき問題である。



19대 대통령 선거

 

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59일로 확정되면서 대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 보수와 진보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자리하고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자신과 자신의 당만이 앞으로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보수고 진정한 진보라는 주장을 앞세우고 있다.

 

대체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가? 자칫 모호한 보수와 진보 논쟁 속에서 그 동안 한국 정치가 보여주었던 야합과 반목이 반복될까 두렵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국민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탄식과 함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우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켜 서로 대척하는 사상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상 보수와 진보는 서로 맞물려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면 다른 하나는 자동적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생활방식, 사회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태도를 말한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사회 제도는 과거 어느 시기에 그 사회를 지배했던 정신적 태도와 사유의 산물이다. 그런데 삶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사회는 끊임없이 현실에 더 적합한 정신적 태도와 사유를 요구한다.

 

이 때 진보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관점과 사고방식,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제도 조정의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보인다. , 진보는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에 대항하면서 변혁을 통해 새롭게 삶을 바꾸려는 성향이다. 반면, 보수는 익숙한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다. ,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고 기존의 사회 체제 유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왜 보수주의자가 되고 진보주의자가 되는가?

 

그렇다면 왜 누구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누구는 진보주의자가 되는가? 이는 생활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 때문이다.

 

생활환경의 변화에 강하게 노출되어 그것을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사고를 쉽게 받아들여 진보주의자가 된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주로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보수적 성격이 강한데,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 고급 공무원, 종교 지도자, 재벌 총수와 그 가족들, 기업 경영자와 임원들, 대학교수, 대형 신문사와 방송사 간부들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굳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가면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바꾸고 조정하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 없고 가난한 하위 소득계층에 있는 사람들도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돈 많은 사람들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생활환경의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생각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인다.

 

또한 대체로 고령층이 청년들보다 더 보수적이다. 젊은이들은 기존 제도와 정신적 태도에 노출된 기간이 짧으며, 지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하여 기존의 것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하여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고는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지녀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지면서 보수적으로 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25세 때 자유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35세 때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고 했다. 이를 빗대어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변형하여 젊어서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진보주의자면 철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우파와 좌파

 

사람들은 흔히들 보수를 우파(right), 진보를 좌파(left)라고 부른다. 이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 개최되었던 국민의회에서 유래한 것이다. 국민회의 의장석 왼쪽에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화파가 자리 잡았고, 오른쪽에는 예전의 왕정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왕당파가 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리 배치는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열렸던 국민공회(1792)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민들을 대변해 급진적 변화를 주장하는 자코뱅파(Jacobins)’가 의장석의 왼쪽에 자리 잡았고, 부자 계층을 대표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지롱드파(Girondins)’가 의장석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보이는 진보 세력을 좌파라고 부르고, 점진적이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보수 성향을 우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남쪽은 우파, 북쪽은 좌파로 나뉘어 민족이 분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6·25 전쟁을 겪고 나니 사람들의 인식에 좌파는 곧 북한을 나타내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과거 정권들은 정부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좌파’, ‘좌익’, ‘빨갱이라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경제에서의 보수와 진보

 

그런데 경제학도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 보수는 모든 것을 시장 원리에 맡기고 정부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장려한다. 이른바 시장과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이 보수에 가깝다.

 

이들은 개인이 부를 축적하도록 정부가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부를 얻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가도 함께 부유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부를 축적하도록 내버려두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진보는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없애거나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국가가 경제 활동에 개입하여 부(富)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

 

현재 사회에서 공인되고 통용되는 생활양식은 옳은 것, 선한 것, 합당한 것, 아름다운 것 등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생활환경이 변화할 때, 그것이 몰고 오는 충격이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전달되지 않는다. 보수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이러한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 한다. 반면 진보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변화를 지향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결코 혁신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한 사회는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할 것이다. 반대로 보수주의자들이 없고 진보주의자만 있다면 그 사회는 안정성을 잃어버린다. 생활환경의 사소한 변화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혁명으로 번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 모두가 제 기능을 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날아가는 새에게 중요한 것은 오른쪽, 왼쪽 날개가 모두 온전히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회 발전에 있어서 보수가 구심력이라면 진보는 원심력인 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룰 때 민주정치는 발전한다. 각 정당들이 자신의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것은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다만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 중 누가 옳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국민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정치에 잘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다.

 

신앙의 보수와 진보

 

인간은 영혼육으로 존재한다. 굳이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에 영과 육을 대입하여 본다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차원을 높여 나가고자 하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존재다. 반면, 우리의 육신은 기존의 습성과 편안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물학적 본능을 보이는 보수적 성향의 존재다.

 

하지만 기존의 편안함에 젖어서는 절대로 삶이 변화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시대에 새롭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태도를 고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불균형한 삶이 아닌 균형 잡힌 삶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새로운 시대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보적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구약이라는 기존의 인식관에 사로잡혀 예수가 전하는 신약의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바리새인, 사두개인 같은 보수적인 태도는 분명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정명석 목사님께서는 인간의 영육은 서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 따라 우리의 행실이 변하고, 그러한 행실의 변화로 인해 영의 구원이 좌우된다고 말씀하셨다.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오늘날, 과연 나는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한번 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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