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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GO24の’ポケット’記者と共に歩く「経済散策」・・・経済の生きた本になって経済を通した神様の摂理歴史を証するためにペンを取りました。主と共に美しく神秘的な天国の経済散策路を歩いてみませんか?
選挙をすべき理由

2017/05/05|閲覧数 873

Translation :akashi

民主主義の花「選挙」
第19代大統領選挙が目前に迫っている。大統領は国民に代わって国の財政を運営する代表者であるため、国民によって選ばれる選出職である。つまり、すべての国民が直接政治に参加することはできないため、国民は選挙を通して代表を選び、代表に選ばれた代表者が、国民に代わって政策を決定し、国の仕事をするのである。

そうすることで、民主主義国家の国民であれば、選挙を通して自分の意見を政治に反映させることができる。言い換えると、選挙は国家の主人である国民が、自分の権利を正当に行使して政治に参加することができる最も基本的で簡単な方法である。だから、選挙を「民主主義の花」と呼ぶ。

コンドルセの逆説(Condorcet's paradox)
しかし、民主主義で採用している多数決意思決定方式は、経済学的に見ると一部欠陥があるとも言える。
まず、フランスの政治理論家であるコンドルセ(Marquis de Condorcet、1743〜1794)の名前を取って「コンドルセの逆説」(Condorcet's paradox)または「投票の逆説」(voting paradox)と呼ばれるものがある。コンドルセは、多数決によって多数が望む候補を選択する際に、一貫性の観点から問題が発生しうると指摘した。これは、多数決によっては移行性(transitivity)がある社会的意思決定ができない可能性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ここで移行性とは、AをBより好み、BをCより好むなら、必ずAがCより選好されるはずだという意味である。
簡単な例を挙げてみよう。ある会社で同じ部署に勤務するキム部長、オ課長、チェ代理3 人で一緒にランチをすることにした。ところで、この三人は食べ物の好みが違う。彼らの選好は以下の通りである。
キム部長:日本料理> 韓国料理> 中華料理
オ課長:中華料理> 日本料理> 韓国料理
チェ代理:韓国料理> 中華料理> 日本料理
結局、三人は合理的な意思決定のために投票で食事のメニューを選ぶことに決めた。ところで、日本料理を韓国料理より好む人が二人(キム部長、オ課長)であり、韓国料理を中華料理より好む人も二人(キム部長、チェ代理)である。また、中華料理が日本料理より好きな人も二人(オ課長、チェ代理)になる。
したがって、多数決の原則に基づいて、日本料理と韓国料理の中では日本料理を、韓国料理と中華料理の中では韓国料理を、中華料理と日本料理の中では中華料理を選択することになる。すると結局、「日本料理> 韓国料理> 中華料理> 日本料理」という矛盾によって正しい決定を下すことができなくなる。投票による民主的な選択の試みが、合理的な結果につながらないのである。これを拡大してみると、国家的な大事を決定する選挙においても、国民の選好が正しく把握されていない場合、合理的な意思決定ができない可能性があることを示唆している。

ボルダの逆説(Borda's paradox)
一方、コンドルセと同時期に生きた数学者ボルダ(Jean-Charles de Borda)は、多数決によって選出された候補者が、多数が最も望まない候補者になるという矛盾した状況が発生する可能性があることを提示した。
簡単な例を挙げてみよう。同じ大学、同じ学科の友達7 人(A〜G)が英語を学ぶために、アメリカ、イギリス、オーストラリアのいずれかの国を選択して、語学研修に行こうとしている。ところが、彼らは互いに意見が一致しないため、投票で研修先を決定することにした。彼らがそれぞれ選好する国は次の通りである。
A:アメリカ> イギリス> オーストラリア
B:アメリカ> イギリス> オーストラリア
C:アメリカ> イギリス> オーストラリア
D:イギリス> オーストラリア> アメリカ
E:イギリス> オーストラリア> アメリカ
F:オーストラリア> イギリス> アメリカ
G:オーストラリア> イギリス> アメリカ
今、彼らが多数決によって最も行きたい国を選んだ場合、アメリカ(3 票)、イギリス(2 票)、オーストラリア(2 票)となって、アメリカに決定される。ところが、逆に最も行きたくない国を選ぶ投票をすると、アメリカ(4 票)、オーストラリア(3 票)、イギリス(0 票)となり、今回もアメリカになる。したがって、「最も行きたい国= 最も行きたくない国」という矛盾した結果が示されるのである。
このような点を補完するために、ボルダは有権者の選好度に応じて候補に順位を付けて投票する方法を提案した。例えば、1 位は10 点、2 位は9 点、3 位は8 点などと計算し、最終的な点数が最も高い候補が当選する方式である。現在アメリカのメジャーリーグでMVPを選定する時、このような方法を使用している。しかし、この方式も多様な選好度を反映するという長所はあるが、何度も1位を取った候補が一度も1 位になれなかった候補に総点で劣る現象が発生することがあるため、完全に合理的だと見ることは難しい。

アローの不可能性定理(Arrow's Impossibility Theorem)
この他にも、1972年にノーベル経済学賞を受賞したケネス・アロー(Kenneth J. Arrow)は、民主主義が前提とする合理的意思決定が全く不可能であることを数学的に証明した。彼は1951年に「社会的選択と個人の価値(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という論文で、多数決による意思決定が決して合理的ではないことを明らかにした。これを「アローの不可能性定理(Arrow's Impossibility Theorem)」という。
アローの不可能性定理は、投票制度が社会的選択手段として完璧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示した。例えば、ランチの場所を決める上記の事例で、最終決定は最も地位が高いキム部長の思い通りに決まる確率が高いのである。
では、政治経済学的な観点でこのように投票が不完全なのにもかかわらず、選挙を必ずする必要があるのだろうか?ただ選挙権を行使せずに中立を保ってはいけないのか?しかし、投票権というものがただで得られたもの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知っているなら、投票権を行使することが民主主義市民としての望ましい姿勢である。

チャーチスト運動:労働者の選挙権
イギリスでは1832年に選挙法が改正された。選挙法の改正を通じて不合理な選挙区をなくし、選挙資格を緩和して、大部分の中産階級に選挙権を付与した。しかし、労働者階級に対する投票権付与は一切議論されないまま排除された。スズメの涙ほどのわずかな賃金で一日14 時間に迫る重労働に苦しんでいた労働者階級の期待は粉々に砕けた。
結局、イギリスの労働者は、1830年代半ばから、経済的・社会的に積もった不満と共に選挙権獲得に対する要求の声を上げていった。彼らは議会の改革を要求し、成人男性の普通選挙権をはじめとして、無記名投票、議員に対する歳費支払い、選挙区の平等、議員の財産資格の撤廃などを盛り込んだ人民憲章(People's chart)の請願を1839年、1842年、1848年の3回に渡って行なった。これをチャーチスト運動(Chartist movement)と呼ぶ。
しかし、議会はこのような労働者の請願を拒否し、指導者を逮捕した。しかし、時間が流れ、1867年2次選挙法改正が行われると共に、大部分の都市賃金労働者に選挙権が与えられた。それから5年後の1872年には秘密投票まで保証され、既存の権力者による賄賂や圧力による投票慣行が消えるなど、選挙制度と文化が先進化する様子が見られた。1884年第3回選挙法改正では、その対象が農民にまで拡大した。

このような変化の背景には、チャーチスト運動で示した労働者の力と声があった。チャーチスト運動の指導者だったジョセフ・スティーブンソン牧師は言った。「私にとって普通選挙権はフォークとナイフのように生活に密着している。すべての労働者が良いコートをまとい、家族全員がまともな家に住み、ちゃんとした食事をする権利があることを意味する。」

エミリー・ディヴィソンの犠牲:女性参政権
イギリスで女性に参政権が初めて与えられたのは、1918年である。それさえも30歳以上の女性にのみ投票権が与えられた限定的な女性参政権だった。
しかし、このような限定的参政権を得るまでにも、一人の女性の犠牲があった。1913 年、ロンドン南部で行われた競馬大会で暴走するように走る競走馬の前に一人の女性が身を投じた。彼女の名前はエミリー・ディヴィソン(Emily Wiling Davinson、1872〜1913)である。倒れた彼女のコートには「女性に参政権を」と書かれていた。4 日後、彼女は病院のベッドで息を引き取ったが、イギリスの女性たちは巨大なデモ行列をつくってディヴィソンの葬儀を行い、この事件は結局、イギリスの女性参政権獲得を早めるきっかけになった。

セルマ-モンゴメリー行進:黒人参政権
1965年3月、アメリカのアラバマ州セルマ(Selma)では、黒人投票権争奪のために州議会があるモンゴメリー(Montgomery)まで、3 回の行進が始まった。これを「セルマ-モンゴメリー行進(March from Selma to Montgomery)」というが、3月7日、3月9日、3月21日に三回にわたって行われた。
当時、アメリカのアラバマ州セルマの人口の半分を占める黒人は、差別と脅迫によって投票権を保証されず、黒人はこのような状況を議会に知らせようとした。そのため、1965年3月7日、約600人の黒人がアラバマ州セルマを出発した。明らかに非暴力抵抗運動であった。しかし、武装した警察はデモ隊をこん棒で攻撃した。この日の警察の無差別攻撃は「血の日曜日」という表現を使うほど無慈悲で暴力的だった。
1 次行進が「血の日曜日」となって失敗すると、当時アメリカの黒人人権活動家でノーベル平和賞まで受賞したマーティン・ルーサー・キング(Martin Luther King)牧師がセルマに来るようになり、3月9日、2 次行進を行なった。この時、多くの人が2 次行進に参加したが、再び失敗してしまう。2 次行進を試みた後、デモに同調した白人民権運動家ジェームス・リーブ(James Reeb)が白人人種差別主義者たちから攻撃を受け重傷を負ったが、地域の各病院が治療を拒否したため、3月11日に死亡する事件も起こった。
そして3月21日に、戦列を再整備した行進隊が再び3次行進を行い、結局はモンゴメリーまで行進することに成功するようになる。この行進の結果、1965年8月に黒人の参政権の制限を禁止する連邦投票法が可決された。

ただで与えられるものはない
このように、民主主義社会において選挙権は天からただ落ちてきたものではなく、市民によるより良い生活のための闘争と、その過程での犠牲によって得られたものである。従って、自分に与えられた貴重な一票を行使すべきではないだろうか?自分が行使できる一票は、自然に、そしてただで得たものではないからである。
同様に、救いと引き上げもただで得られたものではない。まさに主の血の涙の祈りと犠牲があったからこそ可能だったのである。しかし、このような事実を忘却したまま、自分が現在享受している救いと引き上げの祝福を当然のこととして受けとめる時、簡単にあきらめるようになる可能性がある。まさに選挙権の貴重さを知らないままただ無視してしまうようなことだ。
ダンテ(Alighieri Dante)は言った。「地獄で最も熱い場所は、政治的激変期に中立を保った者たちのために備えられている。棄権は中立ではない。暗黙的同調だ。」自分に与えられた選挙権を放棄することが、引き上げを放棄することと大差がないと言うなら、行き過ぎた解釈だろうか?選挙権行使!それはまさに我々の生活のためのものなのである。

 

민주주의 꽃 선거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 살림을 운영하는 대표자이기 때문에 국민들에 의해 뽑힌 선출직이다. ,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대표로 뽑힌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나랏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선거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부른다.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 의사 결정 방식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일부 결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우선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인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의 이름을 따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 또는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콩도르세는 다수결을 통해 다수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데 일관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수결을 통해서는 이행성(transitivity) 있는 사회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행성이란 AB보다 좋아하고 BC보다 좋아하면, 반드시 AC보다 선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회사에서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김부장, 오과장, 최대리 3명이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음식에 대한 취향이 서로 다르다. 이들의 선호는 다음과 같다.

 

김부장 : 일식 > 한식 > 중식

오과장 : 중식 > 일식 > 한식

최대리 : 한식 > 중식 > 일식

 

결국 세 사람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투표를 통해 식사 메뉴를 고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일식을 한식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두 명(김부장, 오과장)이고, 한식을 중식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두 명(김부장, 최대리)이다. 또한 중식이 일식보다 좋다는 사람도 두 명(오과장, 최대리)이나 된다.

 

따라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일식과 한식 중에서는 일식을, 한식과 중식 중에서는 한식을, 중식과 일식 중에서는 중식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일식>한식>중식>일식이라는 모순으로 인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투표를 통한 민주적인 선택 시도가 합리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확대해 보면, 국가적인 대사를 결정하는 선거에서도 국민들의 선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보르다의 역설(Borda’s paradox)

 

한편 콩도르세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수학자 보르다(Jean-Charles de Borda)는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후보가 다수가 가장 원하지 않는 후보가 될 수도 있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있는 친구들 7(A~G)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어학연수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투표로 여행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들이 각자 선호하는 나라는 다음과 같다.

 

A : 미국 > 영국 > 호주

B : 미국 > 영국 > 호주

C : 미국 > 영국 > 호주

D : 영국 > 호주 > 미국

E : 영국 > 호주 > 미국

F : 호주 > 영국 > 미국

G : 호주 > 영국 > 미국

 

이제 이들이 다수결에 의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고른다면 미국(3), 영국(2), 호주(2)가 되어 미국이 결정된다. 그런데 거꾸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나라를 고르는 투표를 하게 되면 미국(4), 호주(3), 영국(0)이 되어 이번에도 미국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모순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르다는 유권자가 선호도에 따라 후보에게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1위는 10, 2위는 9, 3위는 8점 등 이런 식으로 계산하여 최종 점수가 가장 높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MVP를 선정할 때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도 다양한 선호도를 반영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여러 번 1위를 차지한 후보가 한 번도 1위를 못한 후보에게 총점에서는 뒤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

 

이 외에도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Kenneth J. Arrow)는 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1951'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라는 논문에서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라고 한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는 투표 제도가 사회적 선택 수단으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점심 식사 장소를 정하는 위의 사례에서 최종 결정은 가장 지위가 높은 김부장 마음대로 결정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렇게 투표가 불완전한데, 선거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안되는 것인가? 하지만 투표권이라는 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다.

 

차티스트 운동 : 노동자의 선거권


영국에서는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하여 불합리한 선거구를 없애고 선거 자격을 완화하여 대부분의 중산층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노동 계급에 대한 투표권 부여는 일체 논의되지 않은 채 배제되었다. 쥐꼬리만큼 적은 임금에 하루 14시간에 육박하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신음하던 노동자 계급의 기대는 산산 조각났다.

 

결국 영국의 노동자들은 183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사회적으로 쌓여온 불만과 함께 선거권 획득을 위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들은 의회의 개혁을 요구하고, 성인 남자 보통 선거권을 비롯하여 무기명 투표, 의원에 대한 세비 지불, 선거구 평등, 의원 재산자격의 철폐 등을 담은 인민헌장(People’s chart) 청원을 1839, 1842, 1848년의 3차례에 걸쳐 이루어냈다. 이를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라 부른다.

 

그러나 의회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청원을 거부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8672차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도시임금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72년에는 비밀투표까지 보장되면서 기존의 힘 있는 자에 의한 뇌물과 압력에 의한 투표 관행이 사라지는 등 선거제도와 문화가 선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884년 제3차 선거법 개정에서는 그 대상이 농민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차티스트 운동에서 보여준 노동자들의 힘과 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셉 스티븐슨 목사는 말했다. "내게 보통 선거권은 포크와 나이프처럼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모든 노동자가 좋은 외투를 두르고 온 가족이 번듯한 집에 살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에밀리 데이빈슨의 희생 : 여성 참정권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처음으로 주어진 것은 1918년이다. 그마저도 서른 살 이상의 여인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진 제한적인 여성 참정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 참정권을 얻기까지에도 한 여인의 희생이 있었다. 1913년 런던 남부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폭주하듯 내달리는 경주마들 앞에 한 여인이 몸을 내던졌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빈슨(Emily Wiling Davinson, 1872~1913)이다. 쓰러진 그녀의 외투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쓰여 있었다. 4일 후 그녀는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영국의 여성들은 데이빈슨의 장례식을 거대한 시위 행렬로 만들었고, 이 사건은 결국 영국의 여성 참정권 획득을 앞당기는 촉발제가 되었다.

 

셀마 몽고메리 행진 : 흑인 참정권

 

19653,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Selma)에서는 흑인 투표권 쟁취를 위해 주의회가 있는 몽고메리(Montgomery)까지 3차례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를 '셀마 몽고메리 행진March from Selma to Montgomery)'이라 부르는데, 37, 39, 321일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의 인구 중 절반을 차지하는 흑인들은 차별과 협박으로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였고 흑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주의회에 알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196537일 약 600명의 흑인들은 앨라배마 셀마를 출발하였다. 명백히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다. 그러나 무장한 경찰은 시위대를 곤봉과 몽둥이로 공격하였다. 이날 경찰의 무차별 공격은 '피의 일요일'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었다,

 

1차 행진이 '피의 일요일'이 되며 실패하자 당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셀마로 오게 되고 392차 행진을 진행하였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2차 행진에 동참하였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2차 행진 시도 후 시위에 동조한 백인 민권운동가 제임스 리브(James Reeb)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지역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하여 311일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321일 전열을 재정비한 행진대가 다시 3차 행진을 진행하여 결국은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 행진의 결과, 19658월 흑인의 참정권 제한을 금지하는 연방투표법이 통과되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권은 하늘로부터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과 그 과정에서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럴진대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한 표는 저절로 그리고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원과 휴거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주님의 피눈물 나는 기도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구원과 휴거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쉽게 포기할 수도 있게 된다. 바로 선거권의 소중함을 모른 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단테(Alighieri Dante)는 말했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 내게 주어진 선거권을 포기하는 것이 휴거를 포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선거권 행사!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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