経済散策 by ポケット

RGO24の’ポケット’記者と共に歩く「経済散策」・・・経済の生きた本になって経済を通した神様の摂理歴史を証するためにペンを取りました。主と共に美しく神秘的な天国の経済散策路を歩いてみませんか?

칼럼_연재칼럼_経済散策

하나님의 주관권과 있는 데서 찾아야 한다

어두운 밤, 가로등 밑에서 떨어뜨린 금화를 찾고 있던 한 신사를 보고 지나가던 소년이 물었다. “아저씨, 뭘 찾고 계세요?” “응, 금화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단다.” 소년은 신사를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에 같이 금화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찾았지만 금화는 나오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소년이 신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금화를 이 근처에서 잃어버리신 게 분명히 맞나요?” 신사가 대답했다. “물론 여기서 잃은 것은 아니란다. 저 옆에 보이는 길가에서 금화를 잃어 버렸지.”


소년은 신사의 대답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서 금화를 찾고 계신 거죠?” 신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여기는 가로등 밑이라서 밝지 않니. 어두운 데서는 아예 찾을 수가 없으니까 여기서라도 찾아봐야지.”



중국 초(楚)나라의 한 검객이 강을 건너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런데 배가 강 중간쯤에 도착했을 때 배가 갑자기 출렁거렸다. 그만이야 그는 차고 있던 칼을 강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놀란 검객은 급히 작은 단도로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 표시하면서 “이곳이 칼을 떨어뜨린 곳이다”라고 했다.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도착하자 그 검객은 이제 칼을 찾아야겠다며 표시해 놓은 뱃전에서 물에 들어가 칼을 찾으려 했다. 물론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여씨춘추>에 등장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바구니와 상자가 하나씩 놓여 있는 방에 샐리(Sally)와 앤(Anne)이 놀고 있었다. 그때 앤이 보는 앞에서 샐리가 ‘바구니’ 안에 공을 넣어두고 방을 나갔다. 샐리가 없는 사이 앤은 바구니 안에 있는 공을 꺼내 ‘상자’로 옮겨 놓았다. 잠시 후에 샐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공을 찾으려 했다.


이 때 샐리는 과연 어디서 공을 찾으려고 할까? 정답은 당연히 ‘바구니’다. 샐리는 자신이 방을 나간 사이에 앤이 공을 상자로 옮겼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4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이 장면을 보게 한 후 물어보면 대부분 ‘상자’에서 공을 찾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종종 어떤 이론을 지나치게 신봉한 나머지 잘못된 결론을 유도하는 학문적 오류를 지적할 때 원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각주구검은 융통성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세 번째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샐리-앤 테스트’라는 유아 교육 이론이다.


그러나 세 이야기 모두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나마 종종 엉뚱한 데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첫 번째 이야기와 같이 잘못된 이론과 생각에 사로잡혀서일 수도 있고, 각주구검처럼 어리석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샐리-엔 테스트처럼 아직 인식의 수준이 발달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잃어버린 것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꿈, 희망, 가치, 진리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는 것으로 확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와 같이 엉뚱한 곳에서 찾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삶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정명석 목사님은 <네 주관권에서 찾아라. 있는 데서 찾아라>라는 말씀을 통해 이러한 인식의 오류를 없애주시며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바로 없는 데서 아무리 찾아봐도 평생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있는 데서 찾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주관권이다.



때문에 하나님이 보낸 주도 그 시대 주관권에서 찾아야지 다른 주관권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은 주를 통해 그 시대의 것을 주시기에 메시아는 그 시대적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곧 지금이 성약의 주관권이기에 성약 주관권에서 주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미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부지런히 자신을 개발하면 녹이 벗겨진 보화를 찾듯 자신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힘차게 강도 높여 해야 하고, 그렇게 차원 높은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은 그 행동대로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도랑물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부지런히 자신의 신앙을 청소하라고 말씀하셨다.



2019년에 나이 80세가 넘어 한글 공부를 시작한 ‘정을순’ 할머니가 지은 ‘숨바꼭질’이란 시가 전국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시가 매우 인상적이다.


오만데 / 한글이 다 숨었는 걸 / 팔십 넘어 알았다 / 낫 호미 괭이 속에 / ㄱ ㄱ ㄱ / 부침개 접시에 / ㅇ ㅇ ㅇ / 달아 놓은 곶감에 / ㅎ ㅎ ㅎ / 제 아무리 숨어봐라 / 인자는 다 보인다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 때는 한글 모양을 한 사물을 보면서도 한글을 찾지 못했는데, 이제 한글을 깨우치고 나니 숨어 있는 글자가 다 보인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표현한 시다.


사실 우리도 정을순 할머니와 다르지 않다.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주셨는데,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해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한글을 가르쳐주듯 이를 깨우쳐주시고 보이게 해 주셨다. 아마 이 말씀과 진리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도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 속담과 같이 주신 것을 옆에 두고도 엉뚱한 데서 찾아 헤매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말씀을 통해 새로운 눈을 떴으니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찾는 귀한 인생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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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