経済散策 by ポケット

RGO24の’ポケット’記者と共に歩く「経済散策」・・・経済の生きた本になって経済を通した神様の摂理歴史を証するためにペンを取りました。主と共に美しく神秘的な天国の経済散策路を歩いてみませんか?

칼럼_연재칼럼_経済散策

영적인 이해의 언어,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

얼마 전 타계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친인 故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서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성공한 사업가의 표본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연구하면서 그의 경영 철학, 삶의 방식, 가치관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죽음을 앞두고 이 세상에 24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의 대부분은 신(神), 영혼, 사후세계와 같은 종교적 물음이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였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궁금해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신이 우리 눈에 보이면 그 존재가 저절로 증명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해보고자 노력해왔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초기 스콜라 철학자이자 수도사였던 11세기의 안셀무스(Anselmus)는 신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증명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신에 대해 갖는 관념은 완벽함이다. 그러므로 신은 그 무엇보다 완벽한 존재여야만 한다. 그런데 존재 없는 완벽함은 존재를 갖는 완벽함보다 덜 완벽하기 때문에 완벽한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우주론, 인과론, 필연론, 최상적 존재론, 목적론 등 5가지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 내용이 다소 복잡하여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우주론적 관점에서의 신의 존재 증명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에는 항상 변화가 있는데, 그러한 변화는 항상 변화의 기원이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변화의 기원을 거슬러가다 보면 최초의 원인이 되는 원동자(prime mover)를 만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는 전능한 신이 있다면 모든 속성을 다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속성 중의 하나는 바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전지전능한 신은 그 속성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18세기의 칸트(Kant)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을 도덕적 필연으로 여겼다. 즉, 최종 목적인 도덕은 도덕적 세계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또한 18세기 영국 성공회 신부였던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는 인간의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들이 자연적인 과정으로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적인 설계자에 의해 창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나름의 논리와 생각으로 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자들의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보면 모두 일정한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모두 관념적이다. 그렇다보니 때로는 그 논리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며, 게다가 그 증명이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명석 목사님은 신의 존재를 너무나 명쾌하고 쉽게 설명하신다. 바로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직접 믿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뛰어난 팔방미인이 있어도 같이 다녀봐야 팔방미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믿어봐야 진실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자신이 똑똑하게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이는 신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살아오셨고, 지금도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온 수많은 섭리인들이 똑같이 신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목사님은 누구보다 확실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 길이 없는 이 세상을 향해 더욱 외쳐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지상천국, 천상천국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섭리 가운데 부르셨는데, 그저 육체의 소원을 이루는 차원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하시며 이 시대가 하나님을 모를수록, 시대가 외면할수록 외치는 자들이 더 강하게 역사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러면서 시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온 자들이라며 온전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주문하셨다. 또한 성령은 항상 때를 따라 행하신다면서 지금은 신부로서 성령을 쫓아 행할 때라고 강조하셨다. 성령을 쫓아 행하되 자기 할 일을 자기가 행해야 보람도 있고 힘도 있고 능력도 생기고 시대를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다. 매일 성령을 쫓아서 성령에 사로잡혀 살다 보면 영육의 모든 일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말씀대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은 점점 더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해가는 이 시대를 깨우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병철 회장이 남긴 24가지의 의문에 대한 답은 결국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성령을 쫓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티벳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한 사람 옆에 앉아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을 읽어준다. 그런데 스위스의 정신분석과 의사였던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티벳 사자의 서>를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은 닫힌 책으로 시작해서 닫힌 책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열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삶 속에서 영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 책의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기 위해 들려주는 일종의 경전과 같은 책이다. 칼 융의 논리를 빌리자면, 영적인 이해가 없는 한 삶과 죽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는 영원히 닫혀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다. 이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이 영적인 이해의 언어로 작용하여,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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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