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_설교말씀

実体の歴史だ。実感を持ってやりなさい。

본문 .

[御言葉] 鄭明析牧師

[本 文] イザヤ書11章9節

彼らはわが聖なる山のどこにおいても、そこなうことなく、やぶることがない。水が海をおおっているように、主を知る知識が地に満ちるからである。

イザヤ書30章26節
さらに主がその民の傷を包み、その打たれた傷をいやされる日には、月の光は日の光のようになり、日の光は七倍となり、七つの日の光のようにになる。


사람은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만져 봐야 <실체>를 실감 나게 느낍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는
‘실체의 증거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느낌도 만족도도 100%가 안 되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실체>가 없으니,
각종으로 <비유>를 들면서 <실체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듣는 자들은 느낌과 실감과 감동을 약하게 받았고,
이에 증거자들은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증거자들이 증거 하는 터전 위’에
더욱 증거하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물보다 수백 배 작은 <사진>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사진>은 만져 봐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사진>은 다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실체>와는 달리 ‘현실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보다가
사진보다 수백 배 큰 <실체>를 보면 ‘거인’을 본 것 같습니다.
고로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집니다.

<말씀>도 그러합니다.
<말씀>도 ‘실체 주, 실체 성삼위, 실체 역사’를 증거 하는 ‘증거물’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면 실체적인 감이 없으니 <말씀>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제로 행하여 <실체>로 만들어야 수백 배 실감 나게 ‘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실체>로 살아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실체>가 살아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느낌도 감동도 실감도 약합니다.
이제, 자신이 <실체>로 살아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실체>를 가지고 어서 주와 함께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조회수
35,481
좋아요
0
댓글
19
날짜
2016/05/17 14: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