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19시간의 기차여행by 도토리

19시간의 기차여행

 

- 이정명

 


19시간동안 기차를 탔던 적이 있다. 왕복 38시간. '이르쿠츠크' 라는 시베리아의 한 도시에서
공부할 때였다. 후배 두 명과 함께 휴일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제법 큰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출발하기 며칠 전, 역에 가서 기차료를 사고 들뜬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워낙 영토가 넓은 나라라서 19시간은 별로 긴 시간도 아닌 듯 했다. 내가 잠시 함께 살았던
러시아 할머니는 둘째 딸과 7년이 넘도록 못 만나고 있다고 했다.

 

너무 멀리 살아서 오랜 시간 힘든 기차여행을 해야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러시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딸인데 너무 심하지 않나? 나 같으면 눈 딱 감고 한번 갔다 오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학생이라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개방되어 있는 6인용 칸에서 3칸을 사용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늦게 표를 구입했기 때문에 3명 모두 윗칸 침대를 이용해야했다. 출발하는 날, 기차에 들어가 살펴보니 윗칸은 앉아서 허리도 바로 펼 수 없는 불편한 자리였다. 딱, 잠만 잘 수 있는 칸.

'1명이라도 아랫칸이었다면, 자기 전까디 아래 칸 침대에서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다들 많이 아쉬워했다. 결국 우린 아랫칸을 사용하는 여행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귀퉁이에 앉아 있을수 있었다. 가끔 빈 자리가 보이면 냉큼 가서 앉아 있다가 주인이 오면 비켜주곤 했다. 19시간은 생각보다 걸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부러 더 오랫동안 침대 위에서 죽치고 있기도 했지만, 계속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나머지 10시간 동안 이 좁은 기차에서, 그나마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해야했다.

누가 훔쳐갈까 종종 짐이 있는 곳을 쳐다보면서, 좁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씻으면서, 덜컹거리는 좁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시끄러운 낯선 여행객들이 신경 쓰여 힐끔거리면서,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지면서, 7년 동안 둘째딸을 못 봤다는 하숙집 할머니가 이해가 되었다. 이미 19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했을 딸네 집. 나이든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찾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여행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19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 서류에 문제가 생겨 숙소를 정하지 못해 하마터면 돌아갈 뻔도 하고, 마을버스를 놓쳐 깊은 산 속에서 깜깜한 밤을 맞을 뻔도 했다.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난다. 참 길었던 외국에서의 첫 기차여행.
다음에는 일주일이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정말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할 것 같다.
일주일은 생각보다 너무나 긴 시간일 테니까.

 

 

조회수
10,584
좋아요
0
댓글
2
날짜
2008/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