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うつ病脱出記by 날개단약속

 

 

 

한동안은 그랬다.
외딴 섬 같은 이곳 세부 땅에, 진실한 말동무 하나 없이 ‘난 과연 잘 적응하고 있나?’ 라는 의문과 함께, 스스로 성립될 것만 같은 갖가지 핑계 가득한 동굴 속에 갇혀 지내곤 했다.
따지고 보면 결혼을 해 고향이 아닌 딴 지역으로 이사해서 사는 가정들이나 내 처지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한데, 여긴 뭔가 막연하다는 느낌?
 ‘그래, 내 처지가 좀 막연하잖아.’라는 핑계가 나를 신앙적인 삶이 아닌 육적 삶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만드는 리얼리티이자 함정이었다.  그렇게 희미한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곧잘 들곤 하더랬다.
 
작년부터 세 살 아들 녀석 프리스쿨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한국인 아줌마들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내게도 되었다. 다들 이곳에 있게 된 처지는 다르나 육아에서만큼은 열정을 불태우며 언제든 커뮤니티를 이루곤 하는 동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함정이 존재했으니...
 
한번은 기분이 너무 우울하고 일로 바쁘기만 한 아기들 아빠에게 서운함이 확 밀려오던 어느 날, 첫 애 친구 엄마랑 대화하다가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그 엄마가 그런다.
“우울한 맘이 들 땐 자신을 그 기분 속에 내버려 두지 말고, 아이들 아빠한테 기대하지도 말고 무언가 자신이 몰입할 만한 거리를 찾는 거예요.”
 나랑 동갑이자 첫 아들은 초등학생이라 나보다 모든 면에서 베테랑인 이 엄마와 대화를 나누노라면, 난 막 아등바등 인데 이 엄마는 ‘내가 당신 겪은 걸 몇 년 전 다 겪었어요.~’ 하는 듯 특유의 여유로운 포스가 느껴지곤 한다. 이 엄마는 세부 온 지 6년 차, 남편이 모 여행사 세부 지사로 발령 나고 무작정 따라 나오게 된 나와 비슷한 처지. 그런 그녀가 들려준 자신의 우울증 탈출기는 그 순간, 심각했던 나를 ‘푸~’하게 만들었더랬다.

 

그 엄마 왈, “나도 주언 엄마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나에게 이민호가 기적같이 등장해 주었다오.~”
당시 꽃보다 남자 드라마에 푹 빠진 이 엄마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에 힘들어할 겨를도 없이 이민호의 팬임을 자처하며,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 팬 사인회까지 가 주시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언 엄마는 종교가 있으니 신앙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라며 본인 수준에서 열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끝에 그 말까지 덧붙인다.
 
시시때때로, 이성적인 머리로 살기보다는 그나마 감성적인 부분도 고장 나버려 제멋대로인 듯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주님은 사람을 통하여서건 어떤 상황을 통하여서건 내 잘못된 뇌를 고치시기 위해서 역사하심을 깨닫는다. 

 

세상 사람의 방법은 고작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불안감과 우울증을 떨쳐버리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난 너무나도 온전한 스승의 말씀을 듣고 사랑해버린 어쩔 수 없는 신앙인임을... 그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은, 스승의 말씀처럼 그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사는 간판만 신부로 사는 삶이 아닌, 주님 보시기에 진실한 신부로 사는 삶이기를 늘 포기치 않고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내가 몰입해야 할 상대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주님이지 그래....

 

외로워도 막연해도 혹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도... 어쨌거나 우리가 매진해 가야 할 길은 그를 따라 주의 사랑, 신부가 되는 길임을 잊지 말자 다시금 맘을 다져 먹는다.

 

 

writer by 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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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