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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아주입니다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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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아주입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다들 그냥 잡초라고 하죠. 맞아요. 저는 들판에 산등성에 하다못해 아스팔트까지 뚫고 나오는 생명력 강한 풀입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잘 자라요. 옛날에는 나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땐 조금이나마 가치가 있었나 봐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죠. 들짐승도 나를 먹지 않는데요. 나는 길가에 피어 주변을 바라봅니다. 축 늘어진 매력에 버드나무, 화려함을 뽐내는 장미,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 하다못해 아이들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도 부럽습니다. 다들 자기 쓸모를 찾아 제 위치를 찾은 것 같은데 나만 동떨어진 기분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쓸모가 없는 풀이었을까요?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를 뿌리까지 뽑더라고요. 그러나 놀라진 않아요. 잡초에겐 늘 있는 일이에요. 우리는 늘 그렇게 뽑히고 사라져갔으니까요. 잡초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아요.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나서 사라지나 싶어 속상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는 나를 손에 들고는 버리지 않네요. 손 위에 올려놓고는 한참을 걷습니다. 이런 사람은 또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그러더니 나를 화분에 심습니다. 나를? 왜?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합니다. 재주 없는 나를 뭐 볼 게 있다고 여기 심었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궁금할 틈이 없더라고요. 척박한 환경에서만 자라서 그런지 화분이 주는 아늑함은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편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누구 하나 물 주는 일 없는 곳에 있다가 한없이 햇볕 쬐고 때 되면 물을 주니 마구 성장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성장이 빠른 풀이었나?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자 이상 자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도 주변도 나를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한계를 긋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 난 이 정도의 풀이야. 이 정도만 자라면 됐어. 그런데 한 사람의 손길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킬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쑥쑥 자랐습니다. 키가 주인의 턱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은 가위를 들더니 내 가지들을 마구 자릅니다. 햇볕을 머금고 있던 잎들도 더 쳐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나? 왜 그러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더니 내 뿌리를 쑥 뽑아냅니다. 뿌리가 햇빛을 보자 눈을 가립니다. 게다가 흙까지 털어내고 나를 극한까지 몰아갑니다. 햇볕을 받아먹을 잎도, 나를 잡아줄 가지도, 뿌리도 조금씩 메말라 갑니다. 주인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나를 더 큰 화분에 옮겨 놓았습니다. 나는 어느덧 큰 것입니다. 화분이 너무 작아 옮겨야 했습니다. 뿌리는 자리를 찾지 못해 꼬일 대로 꼬이고 가지와 잎은 서로를 뽐내느라 속에서부터 썩어갔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는 잘 크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더 크지 못하고 병 앓이 한다는 것을요. 덕분에 나는 주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 아직도 잘 크고 있습니다. 주인이 가지치기해 준 덕분에 상쾌한 바람이 몸 구석구석 들어옵니다. 잎들도 누구 하나 가려진 것 없이 골고루 잘 받습니다. 나는 주인이 잡아준 수형대로 좌우로 날개를 펴며 멋있게 크고 있습니다.

나는 잘 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주인은 나를 무슨 생각으로 키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왜 주인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요? 주인은 그럽니다. 키우면 더 이상 들풀이 아니라고요. 나는 아직 내 쓰임을 알지 못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나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에요. 주인의 손에 이끌려 지구라는 화분에 심어진 특별한 존재니까요.


참고 : 며칠 뒤 명아주에 대해 검색해 보니 다재다능한 식물이었습니다.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비타민B2도 있어 눈 건강에도 일조하고, 몸에 열도 내려주고, 피부 염증도 가라앉혀 준다고 합니다.
비단풀이라는 잡초는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고, 한련초라는 잡초는 암세포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냥 태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두가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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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