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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죽다’… 요시야 왕의 최후와 하나님의 역사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Jesus Morning Star). 정명석 목사가 설립한 이 선교회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기성교회와 다르게 문자가 아닌 이치에 맞고 과학적으로도 부합되게 해석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나 1980년대 수많은 젊은이들과 엘리트들이 정 목사의 성경에 기초한 가르침에 이끌려 전도되었고 이들은 현재의 선교회로 성장하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금도 선교회의 문을 두드리며 수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온갖 외풍에도 선교회 교인들이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여전히 사람들은 이 선교회에 대해 주목하며 입교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본지는 정명석 목사가 전하는 말씀에 그 비밀의 열쇠가 있다고 보았다. 선교회의 주요 교리에 대해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시리즈연재를 하며 이번 호에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요시야 왕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무지속의 상극 세계’에 대해 다룬다. 성경(바이블 Bible)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편집자주>.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억울한 일이 있다면, 몰라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 중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린도전서 2:8)”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예정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 이야기 가운데, 요시야 왕 시대에 있었던 전쟁 사건을 통해 몰라서 오해하고, 결국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크게 실패했던 사연을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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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야는 솔로몬 왕 시대부터 남아 있던 모든 우상과 신당을 철거하고, 북이스라엘 지역의 우상까지 없애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모두 제거했다.


요시야 왕과 당시 이스라엘 상황
구약성경 역대하(35:16~27)에는 요시야 왕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요시야는 BC 640년경, 8세의 어린 나이로 남유다의 17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과 아버지인 아몬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 므낫세 왕은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 신들을 섬기고 각종 사술과 신접한 자, 박수(무당)를 신임하며,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스리고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 그 뒤를 이은 아몬 왕 역시 악행을 일삼다 결국 암살당했다.
반면, 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는 므낫세 왕과 아몬 왕 때 어그러진 신앙을 바로잡아 나갔다. 그는 히스기야 왕 때보다 더 철저한 종교 개혁을 추진하며 31년간 안정된 국정을 이끌게 된다. 솔로몬 왕 시대부터 남아 있던 모든 우상과 신당을 철거하고, 북이스라엘 지역의 우상까지 없애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모두 제거했다. 또 성전을 정비하고, 종교 질서를 바로잡는 등 왕이 직접 주도해 개혁을 이끌었으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의 기도라면 어떤 것이든 들어주실 만큼 의로운 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유다 내부는 안정적인 국정을 이어갔지만, 주변국 상황은 좋지 않았다. 솔로몬 왕 사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고, BC 722년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남유다 역시 주변 강대국들에 비해 국방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는 앗수르, 북동쪽에는 바벨론, 남쪽으로는 애굽(이집트)이 위치해 있었고, 앗수르의 서쪽 갈그미스 세력은 항구 도시이자 무역 도시로 번창하며 남유다를 위협했다. 이들은 추수 때마다 남유다를 침입해 식량을 약탈하는 등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다. 주변국들의 군사적 압박과 외침(外侵)에 시달리던 요시야 왕은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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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유다와 주변국 지도


요시야 왕, 평안한 죽음 약속 받았으나, 전쟁에서 갑자기 죽게 되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왕이었던 요시야 왕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인물이었다(열왕기상 13:2). 그리고 실제로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섬긴 왕이었다(열왕기하 23:25).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전 왕들과 달리,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역대하 34:3~7), 성전을 재건했으며 율법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했다(역대하 34:8~30). 또한, 유월절을 솔로몬 시대 이후 가장 성대하고 거룩하게 지킨 왕으로도 기록되어 있다(역대하 35:18~19). 그러한 신실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에게 평안한 죽음을 약속하셨다(역대하 34:27~28).
그러나 역대하 35장 20~27절을 보면, 이렇게 훌륭했던 요시야 왕이 어느 날 애굽왕 느고가 사신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리하게 전쟁에 나서게 된다. 애굽왕 느고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갈그미스를 치러 가는 길이니, 길을 비켜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고 전했으나, 요시야 왕은 이 말을 끝내 듣지 않고 싸우다가 결국 전사하고 만다. 왜 요시야 왕은 그토록 하나님께 신실했음에도 이런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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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요시야 왕


느고 왕에게 명령... 요시야 기도 들어주시려 했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사랑하셨기에, 그를 위해 국방 문제를 해결하시려 했다. 그러나 요시야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의 느고 왕을 통해 행하시려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이를 모르고 오해한 요시야는 느고 왕을 적으로 여기고 길을 막아 전쟁을 벌이려 했다. 물론 느고 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갈그미스를 치러 가는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요시야의 기도 또한 응답하시려 하셨다. 당시 남유다의 국방력으로는 갈그미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연이 있다. 요셉 시대 애굽에 흉년이 들어 모든 백성이 굶주릴 위기에 처했을 때, 애굽의 바로 왕조차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 문제를 대비케 했다. 애굽은 이스라엘 유다 민족에게 그 은혜를 갚을 기회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요시야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애굽의 느고 왕을 통해 해결하게 하시려 한 것이다. 즉, 선조 때의 은혜를 갚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시야 왕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한다. 모르면 오해하고, 오해가 원통하고 비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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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평안한 죽음을 약속받았으나 화살에 맞아 죽은 요시야 왕


요시야 왕은 몰라서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무지 속의 상극 세계’
마치 요셉 때 바로 왕이 “네가 다 하라”고 했던 것처럼, 요시야 왕도 느고 왕에게 “네가 다 하라”고 하며 길을 열어주고, 대접하고, 응원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요시야 왕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시야는 몰라서 오해했다. 느고 왕과 의논하여 전쟁을 피하겠다고 해놓고는 도리어 변장하고 자신을 숨긴 채 전장에 나가 지휘했다. 그리고 활 쏘는 자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 이는 성경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나중에 애굽 군대가 실제로 갈그미스로 가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고,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할 필요 없는 전투에 휘말렸음을 뒤늦게 깨닫고, 오랫동안 슬피 울며 애곡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요시야 왕뿐 아니라 많은 군인과 백성이 목숨을 잃었고, 애굽 군대도 피해를 입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려던 일을 요시야 왕이 몰라서 막아버린 셈이었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평안히 해결해 주실 일이었는데, 공연히 싸우고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위해 일하시는 중이셨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구원할 자로 보낸 느고 왕과 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고, 남유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당했다. 잔칫집 같던 나라가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무지 속의 상극(相剋)’이라 표현한 것이다.

모르고 오해하면 안된다. 배우고 알아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는 반드시 배우고 알아야 한다. 모르면 오해하고, 그 오해가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요시야 왕에게 느고 왕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응원하고, 칭찬하고 감사했더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선조 때부터 애굽을 적대시해 온 의식에 사로잡혀 믿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푸는 분이시다. 때로는 나에겐 원수 같지만, 하나님께는 원수가 아니며 그 원수를 통해 내 소원을 이루시고 내 운명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 23:5)”
하나님께서는 때로 원수 같은 자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기도 하신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원수였던 이와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기회를 주시기도 한다. 그러니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영적 강림을 맞은 선교회와 정명석 목사를 통해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고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기독교인들은 2000년 동안 그토록 기도하며 간구하고 기다렸음에도 몰라서 오해하여 싸우게 되었다. 선교회 말씀을 들어보면 정명석 목사는 예수님의 말씀의 원자 폭탄을 가지고 사탄과 무지와 이단을 치러 왔다는 것을 시인한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 진리로 사탄과 싸우는 일을 하는데 이를 모르고 정명석 목사를 적으로 보고 싸운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재림, 의문을 품고 있던 성경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와서 말씀을 들어보라.



기사원문 : [한강일보]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99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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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