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당은 하늘이 숨겨놓은 비밀의 장소,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
- 월명동을 둘러싼 대둔산, 인대산 등 12개 산에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 전해…
풍수지리학은 자연환경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전통적인 지리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산·수(水)·방위·사람 등 4가지 요소를 다 갖추어야 명당이 될 수 있다. 즉 명당의 요건을 다 갖추었어도 그 주인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명당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명당은 주인을 가린다는 의미도 일맥상통할 수 있다. 명당은 자신의 주인에게만 드러나며, 명당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이 선택해 허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 월명동 지역은 예로부터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힌 곳이다.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기독교복음선교회 수련원이 위치해 있는 월명동이다. 이곳 지역은 월명동을 중심으로 12개의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자연이 오랜 세월 빚어낸 지형과 형상이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 수많은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월명동 근처는 큰 인물이 난다는 예언이 많았던 곳이다. 특히 월명동을 둘러싼 12개의 산에는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대둔산에는 좁은 문 두 개를 통과하는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원효대사가 이 전설을 찾아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태고사라는 절을 세웠다. 계룡산에는 정도령이 난다는 전설이 있고, 인대산에는 큰 인물이 허리띠를 가지고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 월명동을 둘러싼 12개 산에는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월명동 인근에 사는 주민은 “예전에 명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풍수지리학자들이 이곳을 찾아왔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명당은 찾지 못하고 겨우 묏자리만 찾아서 돌아갔다”라고 했다. 사실 월명동은 개발하기 전에는 기암절벽을 갖춘 곳도 아니었고, 계곡이 흐르는 곳도 아니었다. 선교회에서 월명동을 개발한 뒤에야 금계포란, 별모양, 자미원, 반월터를 찾을 수 있었다. 개발 전 월명동도 명당으로 보았지만, 다양한 형상이 나오는 천하의 길성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월명동 지역은 아무리 좋은 전설의 땅이라도 숨겨져 있을 때는 평범해 보이지만, 주인을 만나 다듬고 단장하면 그 형상을 드러내어 누구나가 인정하는 명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풍수지리학에서 공통적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 지형은 배산임수를 갖추고 있다. 주산, 좌청룡, 우백호, 안산이 조화롭게 지형을 감싸고, 앞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 좌청룡 우백호 형상으로 산의 준령이 쭉 뻗어 내린 오목한 지형이 명당인데, 월명동이 이러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여러 가지 형상을 보여 주는 것이 최고의 명승지라고 할 수 있다.
보좌 형상으로 좌우에 날개같이 산맥이 뻗어 인대산서 만나
인대산에서 바라보았을 때 월명동은 왕의 보좌처럼 보인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의 기운이 닿는 곳에 있어야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월명동 지역의 산맥은 백두산과 금강산이 남쪽으로 뻗어와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을 타고 소백산맥, 노령산맥, 차령산맥으로 뻗어 있다. 이 산맥이 크게 뻗어 내려오는 끝에 월명동이 있다. 그러니 월명동에 흐르는 기운은 백두산부터 흘러오는 것이다. 주변에 12개의 산이 있고 신기하게도 산의 얼굴이 모두 월명동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산이 월명동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산이 주는 기운을 모두 월명동이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선교회 관계자는 “월명동이 하나님이 보시는 최고의 명당”이라고 강조했다.
▲ 인대산에서 바라본 월명동은 왕의 보좌 형태로 보인다.
왕이 사는 천년의 도읍 반월 터...반달이 차오르듯 형세 뻗어 나가는 것을 의미
월명동 지역은 200년간 반월 터가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전설을 찾아 월명동을 찾아와 묏자리를 쓰고 집을 짓기도 했다. 반월터는 왕이 난다는 자리로 왕의 거주지로 여겨졌다. 신라시대에 왕이 거처하는 곳을 월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 월성도 남산에서 바로 보았을 때는 반달 모양으로 보였다. 월명동도 앞산에서 전망대를 거쳐 청기와집 뒷산까지 산맥이 반달처럼 둘러싸고 있다. 반월이 서서히 차오르며 보름달이 되듯이 그 터에 자리 잡으면 역사가 점점 커가면서 창대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국시대에 의자왕이 꿈에 ‘백제는 둥근 달, 신라는 초승달’이라는 문구가 등에 적혀 있는 거북이를 보았다고 한다. 이를 해몽하기를, 신라는 앞으로 강성하고 백제는 국운이 기울 것이라고 했다. 의자왕은 이 해몽에 진노했지만 결국 그 해몽대로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해 천년 역사를 이어갔다.
▲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다는 반월터가 월명동에도 존재한다.
옛날부터 찾아 헤맨 자미원국...세계 다스릴 왕이 나올 자리
하늘의 중심은 북극성으로 여겨진다. 그 중심에는 옥황상제가 사는 자미원이 있다. 역대 왕들은 자미원을 얻으면 한 나라가 아닌 세계를 통치할 수 있다고 믿어 자미원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조선 건국 초기 자미원국이 지금의 신도안에 있다고 믿고 도읍으로 정하려고 했으나, 하륜이 물이 정면으로 흘러나가 나쁜 터라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조선의 도읍은 한양으로 정해졌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며 도읍을 정하는 문제부터 궁궐터를 정하는 문제까지 풍수지리 사상을 활용했다. 경북궁은 이때 지어진 조선초기 법궁으로 풍수사상을 기반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낙산을 바라보는 형상을 가져야 국운이 장고할 것”이라고 건의했으나, 정도전의 “임금이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남쪽을 향해야 한다”는 백악주산론(白岳主山論)이 받아들여져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게 된다.
▲ 월명동 주변은 좌쳥룡 우백호 형상으로 산의 준령이 쭉 뻗어내린 오목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많은 풍수지리학자들이 자미원국이 한국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공통으로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어딘가를 지목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월명동 또한 자미원국의 형상을 고르게 갖추고 있다. 자미원이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듯이 월명동도 일곱 개의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다. 백두대간부터 내려오는 산의 정기가 모두 월명동에 머물고 있으며, 금계포란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는 12개의 산이 월명동을 둘러싸고 있으며, 작게는 4개의 산이 월명동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복음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는 중심지이기도 해서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종교의 왕인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와서 뜻을 이루는 곳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풍수지리학자들도 인정한 최고의 명당, 월명동. 이곳을 보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기사원문 : [한강일보]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96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