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明析牧師による主日の御言葉から] 心と思いと命を尽くしなさい。苦労しても命の道に行きなさい。

RS3987 | 2017/04/05|閲覧数 911

[御言葉] 鄭明析牧師


人生の前には<成功の道>と<失敗の道>、「二つの道」があります。 しかし人生を見ると、大概<成功のほう>は10%で、<失敗のほう>が90%もあります。 なぜそうなのでしょうか? 自分の思うとおりに、自分が考えていたとおりにならないからです。 また「自分が既存でやっていたこと」を捨てて「新しい道」に行こうとするから、<成功率>が10%程度にしかなりません。 誰でも「自分が生きていた既存の生、既存の道」を振り切って、<新しい道>を行くということは本当に大変です。 既存の生、既存の考え、既存のやり方を捨てて、新しい道で、それに伴う「新しい生」を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 イエス様が来られた時、イスラエルの民は<律法>を中心として神様を信じて、既存の信仰をしていました。 彼らは「既存性」のせいで<新しい御言葉>を受け入れず、<イエス様>を不信して<新しい歴史、新しい道>に来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イエス様の前にも「両端の道」がありましたが、それは聖書に記録されたとおりに<栄光の主>、あるいは<苦難の主>でした。 その時代の人たちがイエス様を信じて受け入れれば<栄光の道>に行くし、イエス様を不信し受け入れなければ<苦難の道>に行くのでした。 しかしイエス様が「栄光の主」になることは、<成功のほう>10%、<失敗のほう>90%でした。 なぜでしょう? ユダヤの宗教人たちが信じて従っていた<既存のモーセの律法>を教えて救うのではなく、神様がくださった<新約の新しい御言葉>を教えて、イエス様ご自身を「メシヤ」と信じるようにしてはじめて、その時代に神様が願われる救いをなすことができるからでした。 <イエス様の心>だけで救いが決まるならば、イエス様が全部やればいいから易しいです。 しかし<救い>は「救い人一人」でするのではなく、「相手」が信じて従い行なってはじめてなされます。 それなのに<既存の律法を中心として神様を信じていた人たち>が既存性を捨てられずに、イエス様を不信し迫害し反対しました。 <失敗のほうの苦難の道>に行く確率が80~90%もありました。 しかしイエス様は結局、その希薄な10%の可能性をもって結局やりとげました! どのようにでしょうか? イエス様が心と思いと命を尽くして最後まで行ない、本人の「体」を十字架に差し出して、罪びとたちのかわりに罪の代価を支払いました。 その「犠牲と愛の条件」で死亡に傾いた形勢を覆して、万民に<救いの道>を開いておき、<新しい歴史、新約の歴史>を広げておきました。 このように<信仰>だけではなく、<人生>も「不利なこと」をもって挑戦するのです。 これからは、苦労しても命の道に行こうという精神を持って心と思いと命を尽くし、主と一緒に行う皆さんになることを祈ります。


 

 



 [말 씀]정명석 목사



인생 앞에는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두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보면, 대부분 <성공 쪽>은 10%이고, <실패 쪽>이 90%나 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가 기존에 했던 것’을 버리고 ‘새 길’로 가려니,

<성공률>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살던 기존의 삶, 기존의 길’을 뿌리치고

<새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기존의 삶과 생각,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 길에서 그에 따른 ‘새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믿으며 

기존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성’ 때문에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불신했으며 <새 역사, 새 길>로 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앞에도 ‘양단의 길’이 있었는데,

곧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영광의 주>, 아니면 <고난의 주>였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영광의 길>로 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불신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난의 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영광의 주’가 되는 것은

<성공 쪽> 10%, <실패 쪽> 90%였습니다.


왜요? 


유대 종교인들이 믿고 따르던 

<기존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신약의 새 말씀>을 가르쳐서

예수님 자신을 ‘메시아’로 믿게 해야

그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만으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예수님이 다 하면 되니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구원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믿고 따르고 행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기존 율법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믿고 있던 자들>이   

기존성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불신하고 핍박하고 반대했습니다. <실패 쪽 고난의 길>로 갈 확률이 80~90%나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희박한 10%의 가능성을 가지고

결국 해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끝까지 행했고,

본인의 ‘몸’을 십자가에 내주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루셨습니다.


그 ‘희생과 사랑의 조건’으로

사망으로 기울어진 판국을 뒤집어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고,

<새 역사, 신약의 길>을 펼쳐 놓으셨습니다.


이렇듯 <신앙>뿐 아니라 

<인생>도 ‘불리한 것’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와 같이 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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