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블스 플랜 1>에서 과학자인 ‘궤도’는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경기를 했다. 서바이벌 게임의 특성상 상대를 죽이고 자신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는 자신과 연합한 사람들을 모두 살리려고 했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살아남았다.
진지한 승부를 기대했던 사람들, 능력자들의 실력을 보고 싶던 사람들은 화를 냈다. 그가 서바이벌 게임을 망쳐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만들어낸 그 때문에 재미있었다고 했다.
“게임에서 죽는 사람들이 마치 실제로 죽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팀원을 살리려고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팀의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아들 때문에 보게 된 웹소설이 생각났다. 그 책의 주인공은 타고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비한 기술을 전수해도 몸에 익힐 수 없는 형편없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았고, 기술을 우회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이루었다. ‘희생’이란 필수 불가결인 것이 아니었던가. 그의 팀원 중 누구도 쉽게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그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 속에서 헤매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 몇 번이었던가. 그는 그걸 감내하고서라도 모두를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리더이지 않은가? 현실에서 그런 리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인간 세상은 때론 냉정한 것이며 리더는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믿을 것이 못 되며 혼자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궤도와 웹소설의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와 많은 사람은 그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우리의 감동은 철없는 감상주의일까? 철학자들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의 감동도 틀리지 않았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이는 세상’에 대해 잘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또 있다고 믿는다. 이름을 붙인다면 영적인 세계, 종교의 세계, 신의 세계라고 하면 될까.
사랑과 희생으로 살아간 예수님의 생은 보이는 세상에서는 실패한 인생이다. 사형을 받고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2000년을 살아남아 오늘날 기독교 세상을 이루었다. 2000년을 살아남은 그의 인생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