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잼과 함께 생각해보는 진리와 사랑의 life

“서장님, 사건이 하나 접수됐습니다. 이번 건은 좀 신경이 쓰입니다.”
“무슨 사건이길래 그래? 지금 막 퇴근하려는데 자네들이 처리하면 안 돼?”
“서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서장님 선배님이라는 그 보디발 장군님이요. 그분 사모님께서 관사에서 요셉이라는 종놈한테 겁탈을 당할 뻔하셨나 봐요. 아무래도 서장님이 직접 나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그래? 거 참, 가나안에서 왔다던 요셉이란 그 친구가? 보디발 장군님 집에 갈 때마다 봤지. 인성 좋고 아주 충직하던데 뭔 짓을 벌인 거야?”
“장군님, 여기 코난 서장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보고 받고 바로 왔습니다.”
“흠, 자네가 직접 왔군. 아니, 내가 그리 믿던 저놈이 어떻게 내 아내를 감히...”
“아, 형님, 잠시 화는 자제하시고요, 천천히 말해주세요.”
“아, 글쎄, 아까 오후에 아내의 여종이 허겁지겁 내 사무실로 와서는 집안에 큰일 났다는 거야. 그래서 급히 왔더니 아내가 방에서 울고 있질 않겠나? 내게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그놈한테 강간을 당할 뻔했다고 하더군. 내가 화가 나서 이놈을 바로 작살을 내려고 했는데...”
“아유, 형님, 그러시면 안 되고요. 그놈은 지금 어딨어요?”
“일단 방에 처넣고 지키라고 해놨네.”
“잘하셨고요. 현장은 애들 시켜 확인할 테니까 형수님은 어디 계세요? 제가 좀 상황을 자세히 들어봐야겠습니다.”
“형수님, 저 왔습니다.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차분히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실래요?”
“아이고, 서장님, 오셨어요? 제가 너무 분하고 창피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세요. 저 아시잖아요? 전혀 문제없이 잘 처리할 테니 걱정마시고요. 적으면서 대화할게요.”
“오후에 집안일 좀 하고 나른해서 방에서 잠시 쉬려고 누었는데 요셉이 날 덮치려고 했어요. 들어온 줄도 몰랐다니까요. 덮치기 직전이었으니 망정이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어요. 요셉 그놈도 놀라서 자기 옷을 떨어뜨리더라고요. 옷을 버려두고 도망쳤어요. 이거에요.”
“아, 이건 떨어뜨린 데 그냥 두시지 않고... 어쨌든 됐고요. 그 다음에는요?”
“바로 종들을 다 불렀어요. 그리곤 내 여종더러 남편에게 가서 빨리 오라고 전하라고 했어요.”
“몇 분 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이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잘... 여보! 당신이 데려온 히브리 종놈이란 말이에요! 이렇게 창피당하게 하려고 데려온 거에요?”
“내가 그놈이 그러리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나? 워낙 진실되고 충성되어 쓴 놈인데... 당신이 워낙 미인이니까 그런 거 아니오?”
“여보! 지금 그런 농담할 때에요?”
“자, 자, 두 분 진정하시고요. 이 정도면 우선은 됐고요. 애들도 현장 확인은 다 끝난 거 같으니 요셉은 우리가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내일 아침 조사를 할게요.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형님. 일단 두 분 푹 쉬세요.”
“아카이, 장군님 집 종들 진술 받아왔나? 어제 현장 확인한 것하고 종들 진술 중에서 뭐 특이한 점 있어? 요셉 조사를 내가 직접 해달라고 장군님이 그러시는 바람에 좀 귀찮게 됐네, 허허.”
“네, 서장님. 종들 진술은 겉보기엔 사모님 말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따져보니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간단한 사건 아닌가 했는데.”
“우선,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닐 수도 있는데, 시간대가 조금 엇갈립니다. 장군님에게 달려갔던 여종은 사모님이 소리를 지른 뒤 곧장 방에 불려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들은 한참 뒤에야 불려 갔다고 했어요. 그 사이 사모님과 여종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종이 쭈삣대니 다그치기도 좀 그렇고…”
“흠... 또?”
“둘째, 옷 문제입니다. 사모님은 ‘요셉이 옷을 떨어뜨리고 도망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종들 말로는 사모님이 직접 그 옷을 계속 들고 흔들며 ‘이 옷이야!’라고 소리지르더랍니다. 보통 피해자라면 손대기도 끔찍할 텐데 오히려 증거처럼 갖고 있었던 겁니다. 더구나 요셉의 옷은 팔뚝 부분만 유난히 구겨져 있었거든요.”
“나도 그 옷 부분이 좀 미심쩍던데 확실히 이상하군.”
“셋째, 종들은 아무래도 사모님 눈치를 좀 보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공통된 묘사를 보면 요셉은 장군님 지시로 잡힐 때도 크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장군님이 요셉을 보고 노발대발할 때조차 요셉은 그저 어리둥절해하며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범인이라면 도망치거나 변명부터 할 텐데 말이죠.”
“아카이, 역시 예리하군. FBI에서 탐낼 만해, 하하. 어쨌든 이 건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군. 요셉을 데려오게.”
“요셉, 너, 내가 장군님 집에 갈 때마다 참 좋게 봤는데 이런 일을 벌이다니 답답하군. 너, 지금부터 정확히 불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날 줄 알아. 어제 오후에 있었던 얘기를 낱낱이 말해 봐.”
“......”
“그리 아무 말을 안 하면 그냥 사모님 진술대로 처리한다. 너한테 도움될 상황은 하나도 없어. 뭐라도 말해 봐.”
“서장님, 어차피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결백합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 앞에 떳떳합니다. 정말이에요.”
“그게 다야? 그건 억지 주장일 뿐이잖아.”
“아닙니다. 장군님은 외국인인 저를 믿고 집안과 재산까지 맡겨 주셨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주인 같아 보였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은혜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앞에서나 장군님 앞에서 그런 죄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나도 자넬 가까이 보아왔으니 이미 잘 아는 사항이고... 그런데 사모님이 아무 일도 없는데 그렇게 얘기하겠나?”
“그게, 저...”
“말해보게나.”
“서장님, 저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나 하나님 앞에 결백함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역정내지 말아주십시오. 실은 얼마 전부터 사모님이 자꾸 제게 이상한 눈짓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듣기 거북한 말씀도 하셨어요. 무슨 말인지 짐작하실 겁니다. 저는 당연히 거절했지요. ‘장군님은 사모님만 빼놓고 제게 모든 것을 맡기신 셈인데 어떻게 제가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고까지 말씀드렸습니다. 거의 매일 그러셔서 저는 아예 사모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어제는 마침 다른 종들이 모두 밖에서 일하는 바람에 집안에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달이 난 겁니다.”
“사모님이 말씀하시는 사건 자체가 중요하니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제 입으로는 차마...”
“장군님께도 말씀드려야 하고, 무엇보다 자네 입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니 계속 얘기하게나.”
“갑자기 제 팔을 잡아 끌고 가셨어요. 제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모님이 그러시는데 민망해하실까 싶어 이러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어 계속 방까지 끌려갔어요. 근데 정말 이러면 안 되겠어서 사모님이 잡아당기던 겉옷을 벗어놓고 부리나케 나와버렸습니다. 어제는 정도가 좀 심해서 그렇지 그전에도 몇 번 그러셔서 모른척하고 있었습니다만 장군님 오시고서 펄쩍 뛰실 때 뭔가 잘못 돌아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장군님 은덕을 생각하면 이런 제 말도 장군님께 전달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서장님 처리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카이, 내가 종합해 보건대 요셉은 혐의가 없어 보여. 자네는 어떤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옷에 대한 것도 그렇고요. 그런 일 저지르면 대부분 튀는 게 정상인데 요셉은 집안에 가만있었거든요. 추가로 다른 종에게도 재차 확인해 봤는데 보디발 장군님이 노발대발할 때도 요셉은 아무것도 모르다 갑자기 당황해하는 눈치였던 게 맞습니다. 일 저지른 놈이 그럴 리 없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덮치려 했다면 당하는 입장에서 밀치는 게 상식인데, 사모님이 옷을 당겼다고 말하는 요셉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여요. 사모님이 ‘요셉이 옷을 떨어뜨렸다, 남겨두고 갔다’ 이 말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요.”
“그렇지?...”
“형님, 좀 늦었습니다. 요셉을 조사한 내용을 보고드린다기보다 형님과 대화한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따로 만나자고 한 겁니다.”
“흠, 무슨 말을 하려 사무실 밖에서 만나자 했는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네.”
“형님, 아무래도 이건 사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 같아요. 형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이건 형수님의 주장만 있는 사건이고, 조금만 들여다봐도 정황상으로도 좀 그렇거든요.”
“자네는 내가 믿는 아우이니 솔직히 털어놓겠네. 사실 내 마누라가 문제 있는 게 맞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알 만한 종들은 다 알아. 특히 여종들이 수군거릴 때면 나도 미치겠네. 마누라한테 뭐라고 했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더 쏘아붙이더군. 요셉은 뭐라던가?”
“그놈 참, 그간 봐왔던 대로이긴 해요. 장군님께 입은 은덕 때문에라도 어떻게 처분되어도 다 받아들이겠다고 하더군요.”
“하아, 이거 참… 어떻게 하면 좋겠나?”
“형님, 이 건은 조용히 덮으시죠? 입건되는 순간 오히려 형님 이미지에 안 좋을 거 같아요. 제 동기 중에 왕실 감옥 총책임자 친구가 있는데 그러잖아도 거기 잔심부름할 놈이 하나 필요하다고 하니 제가 그리로 보내겠습니다. 그리 정리하시죠?”
“코난, 잘 부탁하네.”
“형님, 오래간만입니다. 퇴직하면 시간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자주 뵙질 못하네요, 하하.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러게. 지난주에 요셉 총리가 고향 가족들을 다 불러들여 만났다더군. 요셉이 총리가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 일이 벌써 십 년도 더 넘었는데 아직도 놀라워.”
“그날 그 판단을 잘못했더라면... 훌륭한 젊은이 하나 인생을 영영 꺾을 뻔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나라가 요셉에게 빚지고 있지요.”
“맞네, 명탐정 코난! 자네 판단 덕분이기도 하네. 사실 그 일 뒤로 내 집안도 바뀌었어. 내 아내도, 나도. 요셉이 믿는다는 그 하나님이란 분, 그분 대단하신 거 같아. 내가 요셉이라면 날 가만두지 않을 텐데 말이지. 요즘은 요셉이, 아니 총리님이 날 부를까 두려워, 하하.”
“그래요, 형님. 아직도 생생해요. 요셉은 억울한 누명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고 전혀 흔들리지 않았었거든요. 그 믿음이 오늘날의 ‘총리 요셉’을 만든 게 아닌가 싶네요.”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한때 히브리 종에 불과했던 청년의 맑은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글 | 남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