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칼럼_연재칼럼_3文(もん)コラム

’침묵 속에 절망‘하는 나를 위해.



“대다수 사람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이 문장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1817~1862)의 대표작 ‘월든(Walden)’에 나오는 말로, 사회적 기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저 바쁘기만 한 삶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행함이 없는 삶, 조용한 절망의 상태)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소로는 그 이유가 사회적 기대, 타인의 시선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 고립 상태”, 즉 고요함 속에서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께서는 이번 주일 말씀을 통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행한 자만 안다”는 그 단호한 기준이 필자에게 죽비(竹篦)와 같습니다.

말씀은 결국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리는 실천이다.”
목사님께서 걸어오신 길은 철저히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자신의 몸과 인생으로 실현하며 살아오셨습니다.
부여받으신 사명지 월명동에서 다섯 번의 무너짐에 사회적 기대, 타인의 시선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에 가로막혀 ‘침묵 속에 절망’하지 않으시고, 결국 모든 사람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의 야심작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조용한 절망’은 오늘 필자가 마주한 신앙적 현실과도 무척 닮았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스스로 돌이켜 보니...
말씀은 넘치도록 듣고 있지만, 정작 그 말씀을 ‘사는 삶’으로 바꾸어 내는 데에 무기력하고 둔감해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스승 정명석 목사님의 삶과 그의 말씀이 ‘나’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지 못 하는 안타까운 현실. 내 안에서 말씀이 그저 말씀이 되고, 구호가 되어 버린다면 이는 정말 가장 경계해야 할 위기 상황에 부닥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그저 바쁜 일상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삶은 결국 ‘조용한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야말로 ‘가라지’와 같은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이 정말 두렵습니다.

‘소로’는 조용한 절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듬으로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향해 실천하며 살기 위해 ‘의도적 고립 상태’를 가져 정말 자신의 내면과 깊은 대화, 자기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께서 지속해서 강조하시는 “이때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개발하여 완성해야 한다”는 바로 그 말씀과 통합니다.

이 ‘고립’은 단순히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삶을 살기 위한 진지한 준비입니다.
자신과 진정성 있게 대면하고, 들은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고요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나의 ‘월명동’은 어디인가?
학교? 직장? 가정? 교회?....
그곳에서 과연 내가 만들고 남길 ‘야심작’은 무엇인가?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은 온전한 믿음을 기반으로 제대로 행하는 삶은 살아서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란 약속으로 연결됩니다.

그 열매는 내 삶 속에 기록되고,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며, 세상 앞에 살아 있는 증거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삶은 나도 알고, 세상도 알고, 하나님도 아는 삶....
‘행한 자만 알 수 있는’ 그런 ‘진짜 인생’입니다.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삶은 기존의 도덕과 가치를 초월하여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고난도 이겨내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멈춤 없이 정진하는 사람, 말 그대로 초인(超人, Übermensch)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한 침묵’속 대다수에 속해 살지, 초인이 되어 살지는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결정 될 것입니다.





조회수
27
좋아요
0
댓글
0
날짜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