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인생이 늙는 줄도 모르고 성삼위를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만일 역사를 뛰고 있다면, 그의 출현 자체가 하나의 시대적 사건이자 예언의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신앙 열정을 넘어, 인류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곧 신부(新婦)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의 심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사랑의 대상’을 얻는 것,
그 사랑의 대상이 되기 위해 우리의 육도 영도 빚어지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새 복음은 그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대적 도구이며,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새 시대를 여는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회의 ‘알파 날’은 단지 행사나 기념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 곧 옛 시대와의 완전한 단절, 그리고 새로운 관계로서 하나님과의 결정적 만남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시작은 언제나 십자가를 동반합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의 상징인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종의 시대에는, 주인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냐가 십자가의 본질이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라는 명령 앞에, 믿음 없이 눈을 돌린 불순종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가가 쟁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 영적 왕을 정치적 왕, 반역자로 오해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그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신부의 시대?
그 중심에는 오직 하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사랑은, 육적 사랑으로 왜곡될 위험을 늘 안고 있기에 그 십자가는 오히려 더 깊고 치열한 것이 될 것입니다.
새 시대는 조용히 오지 않습니다.
변화는 늘 혼란과 충돌, 저항과 단절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속에서, 진짜 새 시대를 이끌 자들이 태어납니다.
구시대는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었고, 더 이상 그 틀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현실은, 기존의 질서가 쉽게 새로움을 수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할 때,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가치와 시스템을 부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저항하고, 기존의 질서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그저 세월에 따라 따라오는 변화가 아닌, 완전한 단절과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사람과 기존의 사람,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시대의 ‘말씀’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특히 인간의 ‘뇌’를 특별히 창조하셨습니다.
뉴럴 커플링(Neural Coupling)은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뇌의 동기화 현상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말씀’을 나눌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뇌 활동이 동기화되는 현상입니다.
말을 하는 ‘화자’나 이를 듣는 ‘청자’간의 뇌가 비슷하게 작용을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로써 서로의 뇌는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며, 그 말씀이 같은 믿음, 같은 역사, 같은 꿈으로 사람들을 묶어냅니다.
뉴럴 커플링은 대화나 스토리텔링 같은 ‘말씀’을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집니다.
알파날을 맞은 이즈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가지 있다면 시대 말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새 시대를 먼저 알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은혜를 받은 자, 이를 갚을 만한 값은 결국 이 말씀을 전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알파, 더 비기닝.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새 시대의 주인공으로 부름을 받은 이라면 말씀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십자가를 품고 달려가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