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십자가 위의 메시야
과다출혈? 심장마비?
십자가 위 예수님의 직접적 사인(死因)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질식사'였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채찍으로 등 전체가 찢겨진 상태, 기력까지 소진 된 상황에서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으니 호흡 자체가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이었을 것이라 합니다.
가까스로 호흡을 이어가던, 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까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강도를 향해 구원을 베 풀었던 숙명, 아니 차라리 '천형(天刑)'에 더 가까워 보이는 구원자로서의 사명!!
사명자의 '극한 상황'은 비단 십자가 위 마지막 장면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의를 품은 기성 종교인들의 끝 없는 공격을 감내하면서 '머리 둘 곳 없다'셨던 말씀 그대로 사적인 시공간 조차 갖지 못 한 채 24시간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삶이 공생애 내내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야'는 사탄이 집중 공격을 하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지만 그 모든 따르는자보다 수 천, 수 만배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이겨 나와야 하는,
가장 낮은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와야만 하는 그런 사명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세상에서 가장 구원받기 어려운 자'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어기제가 없었던 인자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왜곡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 행위를 일컫는 정신분석 용어입니다.
누군가 돈 자랑을 하면 괜히 배 아프고 자존감 상해 하면서 자신의 다른 자랑거리(학벌이나 명예등)를 은근히 부풀려 끄집어 내는 것도 '방어기제'의 한 예(例)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방어기제'가 없는 분이셨음을 신약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거나 상황을 일부러 왜곡하는 일이 없던 분입니다.
자기가 위협 받는 상황임이 뻔 한데도 굳이 병자를 치료하시며 '네 죄를 사하였다' 하심이나 '신성 모독' 으로 자신을 향 해 던질 돌덩이를 쥐고 있는 자 들 앞에서 '아브라함 이 전, 태초부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하심 등이 그러함을 알게 합니다.
범인(凡人)에게 '방어기제가 없는 사람'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그런 존재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지극히 '순수한' 인격체거나, 혹은 정말 누군가(3자)의 '대리인' 즉 완벽하게 하나님이 쓰시는 육이 되었을 경우에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 해 봅니다.
여하튼 최고의 극한 상황에 내 던져 져 있으면서 방어기제 조차 없었던 예수, 메시야.
근래에 수 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야'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진정 이런 메시야로서의 삶(십자가에 매 달려 있는 순간까지 오직 구원의 사명을 이루려는, 내내 죄인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성삼위의 육신으로 방어기제 조차 없어 보이는)을 살고 있는지 보게 된다면 그 수의 많음으로 인해 오판할 일은 아예 없을 것입니다.
'맞을 자'의 책임
그래서 주의길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메시야의 길은 그 어떤 사명의 길 보다 험난한 노정이 됩니다.
이 점에서 준비해놓은 터전, 곧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 하여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던 '이방인'의 역사로 틀어졌던 '신약'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역사였습니다.
메시야를 보내는 것이 '하늘의 책임분담'이라고 한다면 그의 오심을 예비하고 그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책임분담'이 될것입니다.
하늘 역사에 있어 주 맞을 준비를 않고 있으면 아예 주를 맞지도 못 할 것이며,
맞았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좋게도 나쁘게도 결정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책임의 중함이 한 없이 크게 느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