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단테(1265년~1321년)가 그의 스승 베르길리우스(BC 70년 ~ BC 19년)의 안내에 따라 지옥을 견학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분명 지옥에 들어 가기 전인데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 옵니다.
가서 쳐다보니 그곳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영혼들이 있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니 지옥문에는 들어 서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베르길리우스는 '이곳은 지옥에 조차 들어 가지 못 한 최악의 영혼들이 있는 곳'이라 일러 줍니다.
'지옥에조차 갈 수 없는 영혼들? 도대체 어떤 영혼들이기에...'
스승이 이어 말합니다.
'그들은 오명도 명성도 없는 미지근한 영혼들이다.
좋은일도 나쁜일도 않고 그저 주어진 상태를 유지만 하던 사람,
소명도 알지 못 하고, 알려하지 않거나 설령 알았다해도 행등으로 옮기지 않던 자들이었다'라고
혹시 지옥에도 못 간 이 영혼들에게 '왜 이리 되었나?' 인터뷰 할 기회라도 주어 진다면 그들은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미지근했던 것은 아닙니다. 뜨겁게 일을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어 결국 낙심하게 되었고
이 후에도 수 차례 뜨겁게 시도를 했었지만, 반복 되는 실패와 낙심 끝에 결국 미지근하게 살게 된 것이라'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단테는 그의 불후의 명작 '신곡(Divina commedia)'을 통해 지옥에 조차 못 가는 이들을 '진정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비겁한 자',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했습니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성경도 분명 이 '미지근한' 영혼들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으며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필자의 스승 정명석 목사께서 금주 말씀 통해 꼭 신앙에 연관 된 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일도 하다보면 어려움이 있고, 실망하게 되는 일이 있지만
"길이 없는데 닦아가면서 가듯, 집이 없는데 지어 가면서 살듯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니
"자기 생각으로 실망 되는 것 많다고 할 일 못하면 안 되고, 낙심 된다고 갈 길을 못 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덧붙여 "낙심말고, 실망할 것도 없이 끝까지 가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의해 꼭 결실을 얻게 된다' 용기를 주십니다.
그의 삶을 알기에 이 말씀은 그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운동력 있는 '실체'로 와 닿습니다.
신앙길 가면서도 처음 열정(첫 신앙)을 잃어 버리고 미지근한 삶을 살게 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차원과 수준에서 생각하여 실망하고 낙심함으로써 스스로 비겁한 삶으로 전락 하는 경우입니다.
오직 정하신 때에 따라 모든 해답과 결실을 허락 해 주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만 의지해 가야 합니다.
사실 저는 '구원과 휴거'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나의 행위와 노력에 의함이 아니라, 오직 전지전능하신 삼위와 주의 사랑과 권능으로 제게 베풀어지는 '은혜(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염려하는 것은 오직 저 홀로 '낙심'함으로 '미지근한 영혼'이 되어 지옥조차 못 들어갈 상태로 만들어 버릴까 두려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