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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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세계정세는 어느 때 보다 큰 폭으로 급변하고 있으며 국내 정세도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극적인 시각차와 그로 인한 갈등 상황이 연출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차와 갈등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객관’과 ‘주관’이라는 두 가지 관점의 본질과 그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 대안을 찾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과 ‘주관’

‘객관’과 ‘주관’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객관적’이라는 것은 검증되고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주관적’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검증되고 불확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객(客)’과 ‘주(主)’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고려할 때 재고 해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객(客)’은 손님, 외부인을 의미하고, ‘주(主)’는 주인, 주체를 의미합니다. 모든 일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주(主)’는 ‘객(客)’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좀 더 명확히 정의하자면, ‘객관적’이란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제3자의 관찰자적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주관적’이란 개인의 생각, 감정, 경험 등에 따라 자신 내부(主)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객관’은 외부의 시각을, ‘주관’은 내부의 시각을 나타냅니다.



‘객관’의 두 가지 한계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위해 ‘객관’과 ‘주관’의 균형이 중요하지만, ‘객관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첫째, ‘객’의 관점 자체가 가지는 한계입니다. 심오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객’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해석과 진실 파악이 어렵습니다.

사건의 당사자, 즉 ‘주(主)’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내막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한 예로, 선교회의 자연 성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기준, 즉 건설업자의 관점에서 비용, 공기, 안전성 등을 고려하여 설계를 진행했다면, 지금과 같이 아름답고 신비하며 웅장한 모습은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섯 번의 무너짐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위대한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 즉 ‘주(主)’의 관점에 따른 설계와 시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객(客)’된 입장에서 도저히 예측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둘째,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객관성’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금주 주일 말씀에서와같이


“바닥이 기울어 있는 데다 어떤 것을 놓아도 기울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보고 듣는 것과
판단하는 것 모두 그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인식이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객관적인 척도를 적용하려 해도, 그 척도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주관적인 판단을 포함합니다.



‘주관(主觀)’의 중요성과 ‘믿음’ 그리고 ‘용기’

이러한 ‘객관성’의 한계는 ‘객관’과 ‘주관’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두 가지 관점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주(主)’, 즉 하나님의 관점, 진정한 ‘주관(主觀)’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달라서 하늘이 땅과 다름 같다”는 말씀처럼,
인간의 제한적인 시각을 넘어선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진정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선교회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세상은 선교회에 ‘객관적’일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확실한 관점은 ‘객관’이 아닌 진정한 ‘주관(主觀)’, 즉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그리고 이 ‘주관’을 확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라는 성경 말씀은 바로 이러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믿음은 세상의 객관적인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주관(主觀)’을 주장하고 관철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계가 있는 ‘객관’을 강요하며 우리의 ‘주관’을 비웃고 혹평하는 군중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관점을 따라 행동하는 ‘용기’입니다.

이 ‘믿음’과 ‘용기’는 2025년 ‘말씀과 선교의 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제가 될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의 ‘객관’이라는 요구에 굴하지 않고, ‘주(主)’의 관점, 즉 ‘주관(主觀)’을 굳건히 지키며 ‘믿음’과 ‘용기’로 나아가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당면한 중요 과제입니다.

누군가의 '객관'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겠지만,

‘말씀과 선교의 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전보다 더욱 깊이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심대하게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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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