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최근 ‘4차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시대’라는 말을 지겨울 정도로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 4차 산업혁명은 농업혁명, 공업혁명에 이어 정보혁명을 거쳐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그 특징으로 보이면서,
이 전의 산업혁명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빠른 속도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 주목 받고 있습니다.
산업 ‘혁명’의 본질은 결국 ‘생산성’의 급격한 상승과 직결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탐욕'은 사람들 사이의 '쟁탈 행위'를 유발 합니다.
이는 타자의 잉여를 빼앗고자 하는 공격의 도구, 혹은 자신들의 잉여를 지키기 위한 방어의 수단으로써 공히 ‘무기‘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잉여’의 ‘분배’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니, 소위 '질서는 있어야 한다.'(Ordnung muss
sein)는 명분으로, (분배의 바로미터로서) ‘계급’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생산성의 증대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준 '잉여'가 인류의 '무기와 분쟁' 그리고 '계급갈등'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이 ‘계급’으로 수립 된 ‘질서’가 지속적으로 유지 되게 하고자, 기득권은 그 질서에 대한 ‘명분’, 그리고 그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한 ‘권위’를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초기 인류사회에서 기득권은 그 권위를 ‘초월적 존재(神)’로부터 부여 받은 것으로 '치장'했습니다.
또, 이 '권위'의 실현을 구체화 하고 또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별(聖別)' 개념을 만들어 특정 장소, 특정 행위 등을 별도로 규정하고 ‘그 곳’에서 ‘그 일’을 자기들이 '독점화' 하는 것에 열을 올렸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유통 했던 아브라함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번 '수공업자 내지 상인'정도가 아니라 상류층의 지배 계급이란 유추도 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과정을 성문화(成文化) 하여 '교리'(의문, 儀文)로 체계화 했습니다.
결국 '종교'는 철저히 가진 자, 지배 계급을 위한 '도구'로 활용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기득 세력이 지극히 이기적인 용도로 ‘신’을 만들어 내었다는 표현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즈음 드디어 침묵하시던 신께서 친히 나타나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이신지를 밝히셨는데, 전혀 뜻 밖에 “죄 많고 가난하며 병들고 배우지 못 한자, 과부(피 지배 계급)들의 신” 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았던 ‘의문(儀文)’은 ‘죽이는 것'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이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기득권자(가진 자, 지배 계급)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 들이기 힘든 신의
모습(신의 자백)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기득권)들이 정의하는 ‘이단’의 개념은, '주리고 헐벗은 힘 없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신이 스스로 밝히신 신의 정의를 수용하지 못 하고 오히려 심판하는 것에서 시작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동일한 연유로 예수그리스도를 '이단'으로 정의하여 죽이기까지 했었습니다.
오늘 날도 이러한 '오류'는 여전히 발생 되고 있는 일입니다.
기득 세력은 여전히 자신의 잉여를 지키기 위해 혹은 타자의 잉여를 빼앗기 위해 '의문'을 사용하고 스스로 신을 만들어 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인간'(기득권)들이 만든 의문, 그리고 그것에 의해 스스로 자신이 ‘정통’임을 주장 하고 자기의 주장과 다른 논리는 ‘이단'의 프레임을 씌우고 보는 잘 못 된 가르침에 현혹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인간’의 '스승'이, 나아가 '구원자'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닌 진짜 우리를 창조하신 위대한 신(오직 성삼위와
성삼위의 뜻대로 계시, 말씀을 받는 자)만이 우리의 스승,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변화의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생산성은 더 늘어 나고 잉여는 더욱 커질지 모르나, 정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알 수 없어 보이는 이 때,
“내게 배우라, 나와 같이 행해라!!” 자신 있게 우리를 이끌어 주실 스승은 과연 누구신지?
참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중차대한 화두(話頭)입니다.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닌 '참 된 신'을 만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