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Holy sprit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Memento Mori'..."
스스로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던 지난 주 어느 날 새벽 기도 중 제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모두 잘 알고 있듯이 'Memento Mori (네가 죽는 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고대 로마에서 유래 된 경구(警句)입니다.
대 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오면 성대한 환영의 의미로 개선식을 열어 주었는데 승전의 기쁨과 수 많은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자칫 거만해 질 수 있는 장군을 위해 부하, 노예를 시켜 장군이 들을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외치도록 했던 말입니다.
신앙인의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곧 사라질 육적인 일에 빠지지 말고 오직 영적인 것을 구하라'정도로 풀이 될 수 있겠으나, 그 날 새벽에 제가 깨달은 바는 네가 죽는 다는 것을 기억하고 '육도 영도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살아야 한다'였으니 기존의 제가 알던 'Memento Mori'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듣게 된 주일 말씀.
"하나님의 축복은 ‘짝의 축복’입니다. '육적 축복’과 ‘영적 축복’ 두 가지 축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양면성 축복, 짝의 축복’을 주신다"는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축복을 받은 대표적 인물로 그는 환경, 여건을 다 떠나서 어디를 가든지 '영'과 '육' 두 세계에 해당 되는 모든‘복’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축복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고유한 축복임으로 문제는 내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란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삼위의 사랑의 짝이 되어 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삶으로 안정화 된 차원에 오른 삶이 되는 것입니다.
논어(論語)에 공자(孔子)가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 종심(從心)입니다.
'종심'은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더 이상 어떤 규율이나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니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삼위의 사랑의 짝이 되어 산다면, 즉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종심'의 경지이며 '육'도'영'도 축복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차원일 것입니다.
필자가 보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꿈꾸는 '휴거'된 삶이 이에 가까워 보입니다.
사실 어느 때 부터인가 '휴거'라는 용어는 기독교 내에서도 금기시 된 감이 없지 않아있습니다. '휴거'는 어느 한 날 몸이 하늘로 붕 치솟아오른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그 부분만 뺀다면 성경과 논어 외에 불경, 중용, 매슬로우의 이론에까지 제가 언뜻 떠 올릴 수 있는 출처만도 수 십 군데도 넘는 곳에 나와 있는 일반적인 개념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곳에 있는 보편적 진리로서의 '휴거'가 왜 이렇게 금기시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람들이 휴거에 도달할 수 있게 할 방법을 알지 못 하고 있으니 언급조차 위험한 단어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영'과 '육'의 축복이 균형을 이룬,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 나지 않는 그런 삶 , 혹 그 길(聖人之道)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말 그대로 '모든 곳에 있는 보편적 진리'가 되도록 힘써 외쳐야 할 그런 개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