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그저 고마워서..."
어떤 노래는 가사 중 한 단어로 인해 감동이 배가가 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선교회가 채택한 봉헌송 '받아 주옵소서'의 경우 '그저'라는 단어가 제게는 그 경우에 해당 됩니다.
아마 작사가는 봉헌송 노랫말 짓기에 앞서 '감사와 드림'의 이유를 떠 올려보셨던 거 같습니다.
'지난 날, 지금까지', '이것 저것 생각지 못 한 것 까지 다 해 주신'...
성삼위, 하늘의 은혜와 사랑이 수 만, 수 십만 가지가 떠 올라 '그저' 고마워서 드린다고 밖에 달리 표현이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한 단어에 담긴 유구한 세월, 무수한 사연들...
그를 모두 다 담아 내고서 천진무구하게 '그저'로 표현 된 이 노래말이 봉헌송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리며 뜨거운 감동을 자아 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말로 표현 되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란'(道可道,非常道) 표현을 굳이 들지 않아도,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왜? 냐고 물었을 때 대답 없이 '그저 웃는' 경지를 고스란히 담아 낸 듯한
'그저 고마워서...'
'그저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을 굳이 '맹목적 감사와 사랑'과 구분해 봅니다.
맹목(盲目)적 사랑이 초기에 콩깍지 씌여 불 붙듯 사랑하다 어슴프레 눈을 뜨고,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 한 것으로 '사랑'을 오해하고 실족하는 치기(稚氣)어린 사랑이라 한다면
'지난 날, 지금까지, 생각지 못 했던 것 까지' 온전히 깨닫고 알게 되어 사랑하는것, 그래서 더 이상 변함 없는, 실족하지 않는 성숙한 사랑이 '그저' 사랑이라 주장 해 봅니다.
"그저 사랑해서..."
정명석 목사님의 명설교들 중 특히 창조 목적과 관련 된 말씀은 압권입니다.
태고의 시절로 돌아 가 살펴 보자면 하나님은 영이시라 육신이 있는 세상, 전혀 다른 존재와의 사랑 세계를 꿈꾸셨습니다.
이미 지어 져 있던 천사들과는 다른, 부모 형제 간 사랑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사랑 세계 말입니다.
하지만 천사장이 사랑의 감수성을 타고 이를 말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루시퍼를 내 치시고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6000년전, '원시인'들이 많이 깨쳐 종교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 때가 되어서 아담, 하와를 골라 내시고 본격적인 역사를 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안타깝게도, 루시퍼가 나타나서 이 둘을 타락시킴으로써 창조목적의 이상세계를 못 펴게 막은 것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자 했을 때 모름지기 천사장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자유의지를 부여 받은 인간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셨으리라 보기는 힘듭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인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사랑'이라는 목표로 창조 사역을 단행하셨을 것입니다.
신(神)은 과거와 현재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미래에서도 존재할 수 있기에 그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장애가 있다해도
'때'가 되면 하늘을 '그저 사랑'할 줄 아는 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며,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 만민이 또한 '그저 사랑하는' 신부의 시대가 열릴 것 또한 아셨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아는 자의 기다림이 오히려 더 초조한 법
신이야말로 누구보다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렸을 것이며 누구보다 더 신부의 시대 도래를 학수고대하셨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그 때가 되면 '그저'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하늘은 '거저' 영생의 선물을 아낌없이 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