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생각의 힘!'
필자의 학창시절, 재미삼아 한 가지 '실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 친구들 중 임의로 여러 명을 골라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낼 때와 상대가 '뭘 낼까?' '생각' 한 뒤 낼 때 승률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확인 했던 기억입니다.
결코 과학적이고 객관적 결과라 인정 받을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의 힘'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체험했던 경험담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이 '결론'에 말씀을 통한 근거를 들자면 '생각'을 타고 나의 '혼'이 실제로 움직이며 활동을 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강조 하시는 '생각이 신이다'는 말씀은 '혼을 써 먹으라'시는 매우 실용적인 말씀이라 생각 해 봅니다.
사실 학교가거나 출근 길에서도 피곤을 등에 지고 아무 생각없이 걸을 때와 '이건 바쁜 와중에 쪼개서 하는 나의 운동시간이다'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파워워킹'을 하는것은 그 효과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몸이 느낍니다.
또 물건을 잘 잃어 버리거나 중요한 것을 깜빡깜빡 잘 잊는 사람도 보면 '이 물건 내가 꼭 챙겨야지' 이런 '생각'을 챙기지 않아서 잘 잃어 버리고, 잘 잊습니다.
'몇 시 몇 분 까지는 늦어도 출발해야겠다' 시계를 보고 정확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움직이면 약속 시간에도 늦지 않습니다.
생각, 제 혼을 써 먹지 못 하는 경우 물건도 분실하고, 중요한 내용을 잊어 버리고, 약속 시간도 잘 못 지킵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과 같이 제 몸 하나로 '혼자'하기 보다 '혼'도 같이 하게 만들면 일이 쉽고 빠르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으로 내 혼을 사용해도 삶의 변화가 일어날진대 '성령'의 함께 하심을 덧 입을 수 있다면...
창세기, 사람 지으시는 장면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이 '생기(生氣)'는 헬라어로 ‘프뉴마'인데 '바람, 숨결, 호흡'의 뜻과 함께 '성령님'을 지칭합니다.
흙덩이 인간이 '성령'을 덧 입게 되었을 때 생령(生靈)으로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성령께서는 특별한 집회나 말씀 때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가 '호흡 하는 것과 같이',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주면서 살피듯이 우리를 늘 살피시고, 때마다 늘 감동을 주시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며,
때마다 깨달을 것들을 깨달아 행하게 해주시고, 생각나지 못해서 행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위로, 격려, 지원해주시면서, 모든 일을 살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심에는 감동을 통해, 그 일을 좋아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성령을 잊은 만큼 감동이 없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재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감동이 없고, 좋아하는 것이 사라져서, 재미 없이 사는 사람을 '생령(生靈)'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저 흙덩이에 불과한, 흙에서 나서 흙이 되어 허무하게 스러져 가는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우리가 호흡을 멈주지 않듯,
성령과 동행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좋아하는 것을 감동에 사로잡혀 사는 '생생한 성령의 인생(生靈)'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흙덩이'에서 '생령'으로 창조 해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목적을 기리는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