ひそひそと主がお話をしてくれます!耳をそばだててよーく聞いてくださいね。そしたら、霊がスクスク!心もスクスク!育ちますよ。
그 당시, 나는 분명히 진리에 대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우리의 육신이 물 없이 3일을 버티기 힘들 듯,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끝없는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었고, 성경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데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와 같이 성경을 궁금해하거나 심도 있게 탐구하려는 사람 조차 주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저, 혼자서 진리에 대해 갈망하며 답답해 할 뿐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셨을까?
사실 나는 모태신앙으로 내 주변에는 기독교인들로 가득했다. 할머니, 엄마, 고모, 숙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교회를 다녔다. 그 당시 어머니는 내가 5살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는데 고등학생 때 교회 반주를 도맡게 되었다. 보수적이고 원칙 주의자이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늘 엄한 교육을 하셨다. 당시 시골에서는 친구 집에서 자기도 하고 늦게 놀다가 귀가 하는 일이 흔했는데, 나의 아버지는 절대로 외박을 허용하지 않으셨고 집에도 일찍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만은 예외였다. 허락 받지 않고서도 교회에서 밤새 놀고 와도 묵인해 주셨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은 그렇게, 언제나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 되었다.
10대가 되면서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앙이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치 않았지만, 성경을 잘 몰랐고,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 고심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존재는 교회 목사님 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 목사’라는 별칭이 있는 분이셨다. 목회보다는 지역의 행사나 일에 관여하고, 성직자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설교는 늘 설교용 책를 보고 읽었고, 새벽기도를 하는 것 같았지만 영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어 성경에 대해 질문해 볼까 망설였지만, 물어봤자 서로 민망한 상황이 올 것 같아서 아예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했다. 진리에 대한 갈증이었을까? 기독교 동아리 C**에 가입해, 정말 열심히 몸부림치듯 신앙 생활에 매진했다.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에 등록해서 청년부에서도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말씀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아마 신앙생활에 미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 든다.
C**의 간사가 돠어 해외선교를 나갈 계획을 구체화 하던 때 아버지의 부름에 꿈을 접고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채워지지 않는 진리와 신앙의 갈증으로 곤고하고 따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네의 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언니는 첫 만남에서부터 전혀 낯설지 않았고 편안함을 느끼게 잘 대해 주었다.
몇 번 만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교회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청년부들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한다고 했다.
나는 성경 공부라는 말에 주저 없이 ‘저도 그 성경 공부 같이하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언니는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언니는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다.
성경 공부는 일대일로 진행됐는데 예상치 않게 재미있었고, 신선한 충격을 줬다.
대학 시절 해 봤던 성경 공부라고 하면 성경의 구절들을 추려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서로 깨달은 것을 나누는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풀어주는데 성경 속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풀어 주니 이해가 잘 되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들이 하나씩 풀어지니 속이 시원했다. 이 말씀들은 몇 천년 동안 감춰뒀던 성경의 비밀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결코 법칙과 이치를 벗어나지 않게 우주를 창조하셨고, 이 땅을 다스리고 계셨다. 기존에 알았던 전지전능함은 순간 ‘뿅!’하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수많은 성경의 사건들. 자연과 만물을 법칙과 원리대로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보기에는 힘든 기적과 같은 현상들은 성경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순리와 이치로 풀어야 할 많은 성경의 이야기들이 그 누군가에 의해 왜곡 되어 결국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진리 앞에서 놀라 환호했고, 다음에 들을 말씀을 기다리는 마음에 늘 설레었다. 이 말씀 이야말로 과연 내가 찾고 찾았던 하나님의 진리였다.
‘장님이 눈을 떴다’라는 말은 이런데다 붙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인생은 이 말씀을 듣기 전(前)과 후(後)로 나뉜다. 장님과 눈 뜬 자의 모습으로.
눈을 뜬 후의 삶은, 내가 인생을 살아갈 근본 이유를 알았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가 실체로 다가와 막연한 두려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성경 구절에 백 프로 공감한다.
진리의 법 테두리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앙 안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 모든 행복은 아는 데서 출발했다. 진리를 알았기에 말씀의 법으로 나를 통제할 수 있었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었으며,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도 건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힘쓴다. 그리고 나라와 세계가 평화롭도록 선한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내 삶이 행복과 감사로 가득하고,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신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하나님 바라기’다!
오직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 24시간, 365일, 팔십 평생을 1분 1초도 헛되이 쓰지 않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시는 분이다. 내가 어렸을 적 성경을 읽으며, 찾았던 바로 그 삶의 표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긴다.
본인이 밥을 먹지 못할지라도, 옷을 입지 못할지라도, 잠을 자지 못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생명을 돌보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삶을 통해 나는 참된 사랑과 헌신을 배웠다.
나의 영원한 인생의 스승은 이렇게 말씀했다.
“나는 말보다 실천입니다”
그랬다. 그는 말에 앞서 몸소 하나님 사랑, 생명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로 인해 나의 인생은 변화되었고,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간다.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 주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가 이 말씀의 길을 가듯이, 나 또한 이 길을 오늘도 흔들림 없이 가고 있다.
스토리텔러 황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