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팀의 히딩크 감독이 기대이상의 결과에 들 떠 있는 대표선수들에게 '자만하지 말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국가대표 감독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기고 뭐하는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실제 '빵과 고기'를 들고 히딩크 감독을 찾아 온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목을 베자 잘린 머리는 금강산 꼭대기에 가 떨어졌고, 끊어진 목에서는 흰 젖과 같은 피가 솟았다. 하늘은 캄캄해지고 땅은 진동하는 데 꽃 비가 내렸다.'
이차돈(異次頓, 502?~527)이 순교하던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글입니다.
이 '사실(Fact)'을 두고 종교성을 강조하려고 '신화화(神話化)' 했다는 주장외에 척수액이 유출 되었을것이라거나, 비방(秘方)의 음식물 섭취로 인해 진짜 흰 피가 나오도록 했다는 설까지도 있다 합니다.
'사실'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이차돈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은 희생을 통해 원시 종교(신앙)에 굳어 져 있던 신라가 불교 국가로 탈바꿈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 되었고, 또 이것이 곧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진실(Truth)'입니다.
신라 당시의 시대상, 이차돈의 눈물 어린 수 많은 포교 활동들... 이런 방대한 '진실'을 단편적인 '순교 사건(사실)' 하나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미화(美化) 되고 신화화가 된 것입니다. 미화 되고 신화화 되면서 '압축'하는 데 당연히 '비유와 상징'등 문학적 기법이 사용 된 것이 아닐까요? 이 점에서 훗 날 해석상의 오류를 야기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판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이 '보이는 부분' 즉 '사실(문자, 외연, 표층)'은 '안 보이는 부분' 곧, '진실(맥락, 심연, 근본, 구조와 시대성)'의 지극히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문자 (text)' 보다 '맥락(context)'을 봐야 하는 것이고,
'사실(Fact)'보다 '진실(Truth)'을 확인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눈에 쉽게 띄고 '진실'은 얼른 알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 '진실'을 가려 구분 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 여론이 극명하게 찬반 양단으로 분리 되어 상호 대결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도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기가 애매한 것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문자'와 '맥락','사실'과 '진실'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은 이 부분은 성경 해석이 중요한 기독교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 해야 하는 중요하면서 풀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2천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과연 네가 불과 구름에 옹위되어 하늘로부터 강림 했었느냐?' 그 사실(Fact) 여부를 따져 예수를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메시야 강림을 긴가민가 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도대체 뭘 보러 광야에 나갔었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어떤 '사실')를 확인하려 했는가?"를 물으시고,
"와 보라!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얻고, 소경이 보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하셨습니다.
'구름'이라는 '문자'에 갇힌 사람들, 진짜 무덤에서 썩은 육신의 시체를 다시 살려 내는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메시야 강림에 대한 '문자'와 '사실'여부가 아닌 그 '맥락'과 '진실(Truth)'을 밝히시고자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금주 말씀을 통해 정명석 목사께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 신 목적(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말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처럼 세상을 사랑하사...(요 3장16절)"
그 '사랑'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그 방법으로 친히 독생자, 메시야를 보내사 그 '육 과 영'의 운명을 걸고, 직접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이 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육으로 오신 메시야는 삶 가운데 성삼위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아들의 때에는 아들의 도리를, 신부의 때에는 신부의 도리를 하늘 앞에 다 하는 삶을 실천하고, 이를 또 시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 역시 그를 따라 그렇게 살게 만듦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의 창조목적을 이 땅에 온전히 다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것이 메시야 강림의 "본질, 진실"이며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일러 주신 것입니다.
혹, 아직도 '문자'에 갇혀 '빵과 고기'로 배 고픈 사람들을 먹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히딩크 감독에게 '빵 과 고기'를 갖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차돈의 잘린 머리가 진짜 금강산 꼭대기까지 날아 갔는지, 정말 흘린 피의 색깔이 흰색 이었는지, 하늘에서 '꽃 비'가 내렸는지 그 '사실' 여부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이제 와서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안 될 것입니다.
'문자'에 눈을 가리우고, '사실'여부를 따지느라 '진실'을 보지 못 하는 안타까운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