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감명깊게 읽은 책 '조선경국전'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덮은 뒤 오히려 여운이 강하게 오래가는 책을 명저(名著)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필자가 읽은 책 중 '명저'라 부를만한 책으로 삼봉(三峰)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추천합니다.
수 백년 전의 내용으로 특히 관련 분야의 문외한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을리 만무하지만, 큰 그림 뿐 아니라, 각 부문의 디테일까지 훌륭하게 살려 낸 이
책은 가히 ‘조선의 설계도’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무엇보다 민본(民本)정치가 실현 되어 ‘모든 백성이 군자(君子)가 되어 사는 나라’를 꿈꾸었던 삼봉 선생의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겨 있어 수 백년 세월을 뛰어 넘어 문외한에게 조차 교감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명실공히 ‘명저’입니다.
‘설계도’는 그 지어질 결과물이 어떠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리 ‘보여주다(Vision)’는 말은 말 그대로 ‘비전을 제시’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리더(Leader)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삼봉'은 '군자의 나라'에 대해 오래도록 강렬하게 꿈꿔 왔었기에 정말 그 ‘나라’가 눈에 보였을것입니다. 그랬기에 그 ‘나라’에 대한 설계도를 자세하게 그려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선의 설계자 삼봉
삼봉은 포은(圃隱) 정몽주 등과 함께 조국 고려(高麗)를 변화시켜 이상국가가 실현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바꿔 보고 더 열심히 해도 '고려'에서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 판단 되었을 때, 아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으로
전향합니다.
새로운 국가, ‘조선(朝鮮)’의 건국은 곧, 옛 국가인 ‘고려’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반역(反逆)’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irony)를 만들어 냅니다.
역성혁명(易姓革命) 성공 후 조선의 건국을 끝내 반대 했던 포은 정몽주는 오히려 만고의 충신으로 부각 되고, 삼봉은 반역혐의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이미 세워진(旣成) 조선의 입장에서 더 이상 새로운 건국(반역)을 감히 시도조차 하는 자가 없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학자에서 정치지도자로, 개국의 제1공신에서, 왕실의 반역자로 삼봉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정조(正祖)는 ‘삼봉집’이라는 정도전의 문집을 편찬해주어 그를 기렸고, 고종(高宗)은 ‘유종공종(儒宗功宗, 유교의 으뜸이요 공적에도 으뜸)이라는 극찬으로 정도전을 높이 평가해 주었습니다.
새 역사의 비전을 제시한 예수
인류역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그 비전(Vision)을 생생하게 제시하신 이가 ‘예수’ 십니다.
그 비전이 생생했던 만큼 누구보다 강렬하고 뜨겁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꿈꿔왔던 분이 예수셨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예수께서도 기존 유대종교인들과
더불어 함께 역사의 뜻을 펴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들이 따르지 않자 ‘뜻’이 다른 곳에 있다 판단하시고 새로운 길(기성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반역', '이단')을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삼봉 선생의 이야기와 같이 새 역사의 건설은 구 역사의 입장에서는 ‘반역’입니다.
그러기에 '반역'에 따르는 ‘고통’은 예수께도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가운데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신 말씀은 ‘정말 이렇게 까지 하며 역사를 펴 나가야 하는 것입니까?’ 깊은 한이 서린 말씀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끝내 다 이루셨습니다.
'뜻'을 기다리며 오직 감사하라
‘새 역사의 건설인지? 구 시대에 대한 반역인지?’ 하는 거창한 문제에서부터 지극히 소소한 일상에서의 다양한 '선택' 문제에 이르기까지, 판단과 구분의 기준을 ‘뜻’에 두어야 한다고 정명석 목사께서는 일러주셨습니다.
최선을 다 하고, 방법을 달리해서 또 해 보고, 그래도 안 될 경우 ‘뜻’이 다른 것에 있다 하셨습니다. ‘뜻’이 아닐 경우 과감하게 기존에 갖고 있던 자신의 생각과 미련을 과감히 버리고,얼른 ‘전환’을 해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단, 말처럼 쉽게 '전환'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뜻’을 우리가 얼른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뜻'으로 드러나기까지 무수한 내/외부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며, 많은 분쟁과 고통이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하늘의 ‘뜻’이라면 밤이 긴 듯 보이지만 문득 태양이 뜨는 새 역사의 아침이 금방 밝아 오듯, ‘뜻’이 드러나고 실현 되어지는 것도 ‘순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고통스런 밤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며 또한 '드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