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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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 인물 베드로

‘사연’이 곧 ‘사랑’이다.

이 명제대로라면 ‘베드로’야 말로 예수님과 가장 사연 많았던 인물, 그래서 수제자였다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행동특성(Behavior Characteristics)으로 분류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 되는 지표는 ‘주도성’(主導性)과 ‘반응성’(反應性)입니다.
행동에 있어 얼마나 주도적인가 하는 측면과 자신 내부와 타인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측면으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이 관점에서 본다면 베드로는 주도성과 반응성이 동시에 높은 인물입니다.

‘나를 따르라’ 말씀에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렸고, 바다 위 걸으시는 예수님 따라 바다 위에 발을 내딛기도 했으며, 예수를 잡아 가는 병사를 향해 칼을 휘둘러 귀를 잘랐습니다. 판단과 행동에 있어 매우 급하고 주도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면서 풍랑 속으로 빠져 들었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가 이 내 심히 통곡 했었습니다.


관련 된 전설도 있다고 하는데...
베드로가 기독교 탄압이 본격화 되자 로마에서 도망쳐 나오다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더니
예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 네가 네 백성을 버린 탓이니라."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반응성이 높았다는 방증(傍證)입니다.

주도성과 반응성이 높은 유형은 마치 롤러코스트를 탄 듯 매우 감성적인 유형으로 입체적인 인물이 됩니다.
행동유형은 말 그대로 ‘개성’일 뿐, 이에 우열(愚劣)이 따로 있을 수는 없지만, 유독 유교 중심의 동양문화권에서는 입체적 인물을 ‘철없는 인간’으로 평가절하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극히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그런데 살펴보면 사실 예수께서도 주도성과 반응성이 높은 유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목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고 '죄 사하는 권세'를 보이셨으며, 성전 앞 장사치들의 상을 뒤 엎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수시로 '우는 모습'을 보이심으로 주도성과 반응성이 높은 유형임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예수 두 분 모두 주도성과 반응성이 동시에 크다 보니 ‘사연’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상호 유사한 유형으로 생각하는 방식, 행동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비슷하여 매우 긴밀한 관계 형성이 가능했으리라 유추가 가능하니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였다는 주장은 아주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향 해 예수께서는 ‘베드로’(아람어로 ‘게바’)라는 이름을 부여 하셨습니다.
물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에 기반을 둔 명명(命名)이었습니다.
롤러코스트를 타듯 행동하는 베드로에 어감만으로도 ‘묵직한’ ‘반석(盤石)’이라는 이름을 허락하신 예수님.



그리고 부활 이 후 다시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차례 물으시고 나서 ”내 양을 먹이라"고  역시 세 번이나 명하셨다는 것을 통해 누구보다 베드로를 잘 파악하시고 어떻게 그를 이끄셔야 하는 지 정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는 그가 평생 지울 수 없었던 '세 번의 부인' 사건에 대한 회복을 해 주신 것이라 보여집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 날 우리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데웁니다.

단, 12명의 사람으로 온 세상을 지배한 예수님의 리더십과 경영능력, 참으로 ‘신의 아들’이셨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아는 바 같이 베드로는 예수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게 됩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열 수 있고, 난제(難題)도 해결할 수 있는 ‘Key’

아주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증인’이 있어 분명하게 증언을 해 준다면 어떤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문은 그 ‘증인’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을 때 열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인생’들을 불러 시대의 ‘증인’(반석)이 되게 하신 주를 제대로 깨닫고 증인 된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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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