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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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서서 그것을 허물라

A와B가 다툽니다.
이 둘을 화평케 하려는 자는 A와 B의 '경계에 서 있는' 자라야 합니다.
A의 입장이든 B의 입장이든 어느 '특정' 편에 속해 있어서는 양자를 화평케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경계에 서 있는 것'
사실은 불안하고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안정적이지 않다 느낄 수 있고, 회색분자라고 다른 쌍방으로부터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려면 아예 바다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거나 아니면 배 위에 올라 타 있어야 될 것인데 '바다 위'(수면, 경계)를 걷는 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합니다.
이 점에서 '수면에 운행'하신다는 하나님(창 1장2절)과 마찬가지로 바다 위(수면)를 걸으셨다(마 14장25절)는 그 아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 궁창과 궁창 그 '경계'에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신과 인간 그 '경계에 서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신의 영역인지 모릅니다.


훌륭한 지도자의 표상, '모세'
그도 하나님과 백성의 '경계에 서' 있던 지도자로서 원망이 하늘을 찌를듯한 백성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전했으며,
대노(大怒)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 지려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메시야'(신의 영역)라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려는 자, 경계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경계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이제 그 경계를 허물어 양자가 '하나' 되게(화평) 해야 합니다.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돌아 선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에게로 향하게 했던 모세처럼


'양자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 되게 한다'는 것을 '융합(融合)'이라 합니다.
4차산업 혁명의 시대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바로 그 '융합'입니다.
현 시대는, 또 미래는 이 '융합'을 빼 놓고서는 말 조차 꺼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융합이 되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 '융합'에서의 '융(融)'은 '녹이다'는 뜻입니다.

'융'이 되어야 '합',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녹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불'입니다. '불'은 곧 '성령'입니다.
그래서 정명석 목사께서 지금 이 시대는 '불의 시대, 성령의 시대'라 하신 말씀은 정말 만배나 공감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새 시대 새 말씀(불, 성령)을 갖고 있는 선교회의 미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밝게 전개 될 지 벌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 가 봅니다.
경계에 서는 것이 신의 영역이라 했는데 이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신의 영역에 감히 도전했던 '베드로'


바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하는 '신앙 고백'으로 끝날 뻔 했던 장면이 '베드로'가 끼어 들면서 훨씬 극적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어부 베드로가 (잠시 동안이나마) 주와 같이 바다 위를 걷는 사건이 일어 났으니까요.


주가 바다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보고 단순 '추종자'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도 주와 같이 그리하게 하소서' 했던 베드로의 용기가 수 천년 지난 후 필자의 심장을 뜨겁게 합니다.


"나도 주와 같이 그리 살게 하소서" 감히 용기 내어 기도합니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천국과 세상의 경계에 선... 그 위대한 삶에 나도 도전 해 보고자 합니다.

경계에 서는 것을 두려워 말 것은 설령 풍파에 빠지더라도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올려 주실 주의 손길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에 서서 경계를 허물고 마침내 화평케 하는 자
시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신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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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