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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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機事)를 줄이고, 기심(機心)을 없애라

빨래는 세탁기, 설겆이는 식기 세척기가 이제 운전조차 자율 운전 자동차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싹 없애 주는 정말 꿈꾸던 '멋진 신세계'가 비로소 우리 눈 앞에 펼쳐 지는 것일까요?
 
공자의 '6년상'을 치렀다고 알려지는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의 일화입니다.
그가 하루는 나이 든 농부가 밭에 대려고 우물가에서 힘겹게 물을 긷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 노인에게 쉽고 편한 '두레'라는 기계(機械)를 설명하면서 사용해 볼 것을 권했더니...
 
'기계를 쓰게 되면 기사(機事)가 생기고, 기사가 있으면 기심(機心)이 생긴다.
 기심이 생기면 순백을 갖출 수 없으며 순백이 갖춰 있지 않으면 정신이 안정 되지 않고
 또 정신이 안정 되지 않으면 도(道)를 담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노인은 '물 긷는 노동'을 한 것이 아니고 '도를 얻기 위한 실천'을 했던 것입니다.
 
물을 얻는 본질적인 일에 기계를 끌어다 쓰게 되면 이제는 그 기계와 관련 된 일(두레의 줄을 주기적으로 새로 갈아 끼거나 하는...)이 생길텐데,
이를 기계와 관련 된 일 즉, '기사(機事)'로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인데 기계들로 인한 '기사'들이 생기면서 번잡해 지는 와중에 내 마음에서 슬슬 더욱 더 편하게 일을 하고 싶은(꾀를 피우고 싶은),

기회를 엿 보는 마음, '기심(機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이 '기심'은 순백(순박,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고, 이 순수하지 않은 마음에서는 안정 된 정신이 자리 잡기 어려우니
결국 큰 도(道,진리)를 담지 못 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 인듯 합니다.


짧게 생각해 봐도...
기사(機事)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기심(機心)이 확대 되면,
거기에 따라 기계들과 사람들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권세, 능력도 점점 커져야 될 것인데,
이는 유한한 자원이라 더 얻기 위해 투쟁과 착취등의 부작용이 수반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필자는 이로써 '기계화나 자본주의의 병폐'에 관한 논의를 이어 가거나,
'기계와 인간의 공존', '기술과 철학'등에 관한 거창한 담론으로 확대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대신, 본질적인 일을 '실천하는 것'과 '도(진리)를 담는다'는 내용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금주 정명석 목사께서...
"사람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권세보다,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하는 것이 권세다.
 역시 실천만이 나의 능력과 권세이며, 실천만이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자기 것으로 삼고, 권세를 부릴 수 있는 비결이다."


하신 말씀은 정말 '도(道)'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 하신 '권세'는 하나님과 나, 사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며

위로부터 오는 무한한 자원이니 투쟁이나 착취의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이 '권세'를 깨달아 외치신 그의 말씀이 정말 위력있음은 평생토록, 한결같이 기사와 기심 없이 순수한 실천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심에서 비롯 된 것입니다.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하신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권세와 능력을 받고 해야 할 본질의 일(하나님이 시킨 일)로 '증인이 될 것'을 일러 주셨는데, 실제 사도들은 이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 시키신 본질적 일을 실천함에 있어) 기사와 기심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함으로써 사도들은...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여,
그 외침으로 각기 다른 지방에서 온 모든 사람들(남녀노소, 다른 문화, 다른 관심사, 서로 다른 철학과 종교적 배경에도 불구하고)이 말씀을 깨달아 돌이킬 수 있게 했으며,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백성이 칭송하며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실천함으로 그들의 행함이 오직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능을 통한 것임을 보여 줬고,
아울러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또 받게 되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감에 기사(機事)는 끝도 없고 기심(機心)은 어느 때 보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온통 흐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도(진리)를 품어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귀히 여기며 그의 일을 행함에 있어 전심을 다 한다면,
우리 스스로 얼마나 큰 권세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임 됨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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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