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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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이 다르다

모두 아시는 바 같이, 4대 성인으로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예수님을 꼽습니다.


'석가모니'는 고대 인도의 왕 태자(太子)로 출생하여 결혼하고 아들까지 두었지만,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생,로,병,사) 인생들을 보며 심히 번뇌하다가, 29세에 출가수행(出家修行)했고,
35세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전도(傳道)'를 시작했습니다.


이 '전도'라는 용어는 사실 불교에서 비롯 된 것이라 합니다.


석가모니의 '전도 선언'에 따르면...
"나와 그대들은 이제 신과 인간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대들이여 이제 전도의 길을 떠나라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머물지 말고 떠나라
 (중략)
 그대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이치에 맞게 조리있게 설(說)하라
 그리고 언제나 깨끗하게 행동하라
 세상에는 아직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진리를 듣지 못 하면 퇴보할것이나 듣는다면 속박을 여의리라."
 (이하 생략)


'석가모니'의 '시작(α,알파)'은 본인의 문제(형이상학)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비롯되었고
그 '벗어남에 대한 해답'(解脫)을 알게 되었을 때 이를 타인들에게도 전하고자 헌신했던 삶이라 요약이 가능 할 것입니다.


'공자'라고 하면 흔히 '인(仁)'을 생각하지만, 사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더욱 강조했다 볼 수 있습니다.

유교(儒敎)의 궁극적인 이상은 ‘예(禮)’로써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사회 질서 확립에 기여해서, 질서를 통해 모두가 즐거운 삶을 영위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 때 공자가 주장한 '돌아가야 할 예(復禮)'란, 주나라의 전통적 제도, 사상, 예법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주나라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여,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로 대변 되는 '가르침'을 통해 이미 정해진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넘어서지 말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 제도가 쇠퇴하면서, 사회가 황폐 일로에 놓여 있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현자(賢者)에 의한 통치'등의 주장으로 사람들의 '계몽'을 통해 체제의 질서(악법도 법이다)를 잡아,

이상적 사회 건설에 관심이 컸던 것은 틀림없으며 바로 이 점에서 공자의 가르침과도 상당 부분 겹쳐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형이상학의 난제를 해결하고 큰 가르침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는 그런 현자(賢者)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범인(凡人)들이 기대하는 성인(聖人)의 모습인지 모릅니다.그리고 시대 '메시야'에 대한 기대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시대의 주(主), 메시야는 달랐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해 사랑하고, 형제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 형이상학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의도,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시면서...

(형이상학의 난제를 해결하고 큰 가르침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리라 기대하는) 누구든지...
(그렇지 않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마 11:6)


오히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해 본인을 드러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프고, 병든 자, 무식하고 가난한 자, 시대 힘 없고 어린 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 모든 사역의 '출발점(
α-point)'이었습니다.


한 번은 수련원장께서

'모르긴 해도 가룟유다가 자살 하지 않고 다시 십자가 달리신 주를 비난하러 찾아 갔다해도 십자가 위 예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을 것이라' 말씀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사랑은 정말 무조건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는 위대함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필자가 좋아하는 '바람의 노래'(노래 조용필 / 작사 김순곤, 1997.05.01) 가사의 일부 입니다.


작사가의 원래 의도는 알지 못 하지만...


시대 주는 온갖 실패(사실은 '실패 처럼 보이는')와 고뇌의 시간들...십자가의 극적인 고통이 자신을 비껴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직 사랑이 해답임을 깨달았기에 이 세상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심지어 배신한 제자들까지)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 역사의 출발점(α)이 '사랑'이었다는 것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이 진리를 조리있게 설(說)'할 수 있기를 희망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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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