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그의 권세와 능력을 다 해 나를 도우시고
그의 권세와 능력을 다 해 날 지키시니
나와 함께 하시며 내게 힘주심을 믿네.“
선교회의 새로운 찬양. 이 가사에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은 천지를 창조하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지극히 작고 작은 ‘나’를 알아주시고 함께 해 주심이 더 위대한 전지전능성을 보이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심을 아는 것이 ‘지식’이며, 초라하기 그지없을 ‘나’를 알아주시고 ‘나’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 까지 함께 해 주시어 도우시고 지켜주심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보편적으로만 보고 배우고 들어 아는 것이 ‘지식’이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알게 된(지식)’ 것과 ‘깨달은(지혜)’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실천’에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깨닫는 자는 바로 실천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지식)으로 내가 당장에 실천할 일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나’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 까지 함께 해 주시어 도우시고 지켜주심을 알 때(지혜) 나의 삶은 새로운 것을 실천하고 삶의 방향(실천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실천’에 관련하여 3종류의 사람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희망’에만 사로 잡혀 사는 사람.
꿈만 꾸는 관념(지식)의 사람이고,
두 번째는 오직 결과로서의 목적만 이루려는 사람.
이는 과정 중의 실천을 중요시 않는(지식)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마지막은 뛰고 달리며 매일 이루어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과정에서도 또한 결과로서의 목적까지도 이룰 수 있는 '지혜'자의 성공적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지식의 사람’과 ‘지혜의 사람’을 구분하는 훌륭한 지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이 같은 ‘말씀’을 들어도 듣는 자에 따라 지식, 지혜로 각각 나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는 듣는 자의 ‘기도’의 여부라고 덧붙여 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말씀을 받지 못하고, 설령 받더라도 지식에 그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대목에서 ‘말씀’이 ‘지식’으로는 항상 존재 해 오지만 시대의 ‘지혜’로 되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시대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말씀이 육신이 됨)나와서 시대 말씀을 비로소 ‘실천‘하게 되는 그런 때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 ‘말씀’이 ‘육신’이 된 자가 출현하여 비로소 ‘말씀’이 ‘실천’ 되어 ‘실체’가 된 것. 이것을 우리는 ‘새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지식‘이라 한다면, 그 소리가 증거 하고자 했던 ’빛‘이 ’지혜‘입니다. 세례요한은 빛을 따라가는 실천 그리고 그 실천을 통한 실체를 빛과 함께 만들지 않았습니다. ’지식‘에 그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 역사’란 무릇 우선은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기도’가 수반 되어야 하며, 기도로 깨달음을 얻은 뒤 ‘실천’이 이어져 새로운 ‘실체’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누가복음 12장 49절)
예수께서 ‘말씀’을 아무리 쏟아 부어 주셨어도 깨닫고 실천에 옮김(불이 붙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시고 너무나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대목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시작 된 ‘새 역사’를 ‘구 역사’는 따라 가야 됩니다.
‘구약’은 ‘신약’으로 넘어 와야 하고 ‘신약’은 다시 ‘성약’으로 건너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애굽을 나와야 신광야로 나올 수 있고, 다시 신광야를 벗어날 때 비로소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것과 같이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다시 말머리를 돌려 되돌아본다면 출(出)애굽에는 ’모세‘, 가나안 입성에는 ’여호수아‘ 라는 특정 된 인물(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었던)이 있다는 것.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사실임을 재확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이 총이고 ’기도‘는 총알이라고 하셨습니다.
2022년 ’말씀과 기도‘의 삶을 통해 의로운 싸움(’실천‘)을 지속하면서 더 위대한 승전(勝戰)의 새로운 역사(’실체‘)를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의로운 싸움'을 두고 새삼스럽게 고백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며 내게 힘주심을 믿네.
두려움 없네. 나는 하나님뿐입니다.”